마음이 이랬으면
(명) 어느 쪽으로 보아도 아름답게 빛나고 맑은 모양
반은 빛나고
반은 짠한
어느 쪽으로 보아도 아름답게 빛나고 맑은 모양.
한쪽 면만 반짝이지 않고,
빛이 어디로 닿든 고르게 투명하게 비추는 느낌.
예전이라면 이리저리 완벽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지금은, 흠집 하나 없는 보석보다,
이리저리 작은 생채기들을 무늬처럼 품은 수정 구슬 같은 마음에 더 어울리는 단어 같다.
팔면영롱한 사람은,
모든 면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빛이 닿을 때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어느 날은 맑고,
어느 날은 조금 흐리지만,
어느 날은 번개 치듯 우르릉 쾅 하지만,
그 모든 면이 합쳐져 결국 한 사람의 빛이 된다.
이래야만 하고 저래선 안 되는 내 멋대로의 경계막은 없다.
예전엔 한결같은 게 좋다고 믿었다.
흔들리지 않는 태도, 변하지 않는 마음.
그런데 살아보니, 그건 ‘인간’을 벗어난 목표다.
인간사를 다 뒤집어쓰고 한결같은 척을 지려 하니 스트레스로 미친다.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보면... 음...
그렇게 사세요... 하고 만다.
나는 깔 건 까고 살아야겠다.
속을 깐다는 소리다.
빛이 닿는 방향이 다르면 그림자도 달라지는 법.
누군가에겐 차갑게, 누군가에겐 따뜻하게 비출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에게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되면 변했다 한다.
생각을 뒤집어봐야 한다.
상대는 늘, 내가 원하는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건, 또는, 그 사람이 나에게는 모든 면을 다 보여야 한다는 건 어디서 오는 오만인지를.
자기 기준의 불편함과 거리낌은 좁쌀 지나갈 틈만큼의 여지도 없이 옹졸하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만의 각이 다양하게 있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팔면영롱이 되는 것 같다.
완벽과 깨끗함은 투명함이 아니다.
부족함과 더러움과 흔들림을 모두 품는 것이 투명함일 것이다.
대부분은 내 기준의 투명함이 아니면 거리를 둔다.
상처라는 이름으로, 내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리를 둔다.
아마 사람이 외로운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내 입장에선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욕심 혹은 오만을 내려놓을 때가 아닐까.
팔면으로 좋은 모습으로만 빛나면 또 뭐 할 거냐며.
팔면영롱의 두 번째 뜻이 부럽다.
아무런 거리낌이나 우울함이 없다...
자기의 어두운 모습을 꾸역꾸역 감추고 밝고 빛나고려만 하는 마음의 반작용으로 오는 게 우울감 아닐까.
거리낌과 우울함이 한가득한 시즌엔 멀디 먼 마음의 단어라 느껴질 것 같다.
팔면영롱.
Ps. 그런데 왜 하필 팔면, 여덟 면일까?
팔면은 원래, 어떤 측면을 나타낸 건지 궁금하다.
당신의 빛은 오늘, 어느 쪽으로 닿고 있나요?
팔면영롱하게 자신을 비춘다는 건, 어떤 태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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