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에 대하여

버티지 마세요, 병되요.

by Maven

추석 연휴가 있어서 금주에 찍을 분량을 미리 찍자는 후배의 제안에 이끌려

무작정, 아무 준비없이 촬영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후배가 그런 얘기를 했다.


"버텨야 할지 고민이 되요"


물론 그만둔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 당시의 고민을 얘기했다.

그는 입사한지 불과 6개월 정도 된 신입사원이다.

그는 선배들이 대단해 보인다고도 했다. 본인은 6개월을 다닌 것도 대단한데

나처럼 10년이 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니 대단하다고 했다.


그 영상에서 나의 역할은 꼰대의 대표 주자라 무엇이든 말을 해야만 해서

무슨 말이든 서두에 내뱉었지만, 사실 그 여운이 꽤 길게 남는다.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는 것에 대해서 고맙기도 하고, 그런 기회를 제공한

유튜브라는 컨텐츠에 대해서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의 허심탄회한 질문에 나의 첫 마디는 이거였다.


"한 회사가 아니라서 그래. 이 곳 저 곳을 전전했으니까."




영상에 얼만큼 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내가 풀어놓은 얘기를 남겨보려 한다.

(영상에서는 부디 꽤 어른 같은 말투였기를 빌며.)


버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를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도망치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버티는 것은 개근상이 아니다. 버티는 것은 성실한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회사는 다르다.

학교는 마음에 안든다고 내가 교무실을 찾아가 사표를 던질 수 없다.

집은 아직 그 동네인데 나 혼자 학교를 옮길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회사는 다르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에 책임이 뒤따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아니, 어차피 선택하지 않아도 책임은 늘 뒤 따른다.


이 세상의 사람을 둘로 나누면 버틸 수 있는 사람과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버텼다고 해서 개근상을 주지도 않고 버티지 못했다고 해서 이직이 안 되지도 않는다.


버틸 수 있는 환경이 있고, 버티지 못하는 환경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그래도 버텨봐.."라고 가장 많이 말하는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친구가 남편이, 와이프가 그만둔다고 하면 (마치 박카스 광고처럼) 때려쳐!! 라고 해도

우리 스스로 버틸 수 없다고 느끼면 꼭 본인에게 먼저 비난을 한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이 끈기도 없는.. "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보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책망이, 비난이 더 거세고 무섭다.


그러지 않아도 돼.

버티지 않아도 돼.





버티든 도망치든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버텨도 지옥이 온다. 이건 당장 오늘도, 내일도 그러니까 너무도 잘 안다.

도망쳐도 지옥이 온다. 이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도망쳐도 지옥이 온다는 걸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도망치는 건, 도망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원하는 곳에 가는 수고를 들여서 다시 지옥을 경험하더라도 최소한 마음은 편할만큼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버틴다. 도망간다.. 등의 단어 표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버티든, 도망가든 어차피 책임은 지게 되어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나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남의 얘기니까 쉽게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의 얘기라서가 아니라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무슨 얘기를 하든 쉬워보인다.

고난은 항상 결정 뒤에 따라온다.

조언 따위에서 묻어 나오는 게 아니다.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선택하고 후회하면 어쩌지? 라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인 건,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선택하고 후회하기까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혹시 후회를 할 때 쯤이면, 방금 전에 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다른 잘못에 대한 후회로 덮일지도 모른다.




괜찮아, 열심히 했어.

그만큼이면 많이 견뎠어.

버티면서 너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


수고했어.



https://youtu.be/D1HQqj7Qi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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