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은 역시 "거거익선"

빅데이터를 통해 들여다본 코로나 라이프

by Maven

2021년 4월 둘째 주, 이번주의 화두는 (선거를 제외하고) 삼성전자의 깜짝실적이었다.


주식시장이 상승세의 끝물을 달리던 지난 1월 초 삼성전자 주가는 10만원을 향해가다가 주춤하더니

8만원대로 안착했고, 최근에야 어닝 서프라이즈 소식이 들려오면서 다시 상승세가 점쳐지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2021년 1분기 매출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각종 언론이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 중 어떤 기사를 보니 1분기 실적의 근거로 '보복소비'라는 소비 심리를 들었는데 나는 약간 갸우뚱 고개를 저었다.


'보복소비'라는 말은 쉽게 얘기하면 소비의 몰빵이다. 다른 전문 용어로는 '시발비용'이 있다. 물론 사용 주체나 규모나 원인은 다를 수 있지만.

어쨋든 일상에서 여러 갈래로 분배되어있던 소비 영역이 갑자기 막히게 되면서 그에 따른 분노(?)가 작동하고, 그에 따라 평소같으면 쉽게 저지르지 못하는 곳에 비용을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명품소비에 주로 붙여졌던 용어였다. 해외여행을 못가게 된 소비자들, 결혼을 어쩔 수 없이 미뤄야했던 소비자들이 에라 모르겠다, 명품을 지른 것 같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물론 그런 심리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게만 해석하면 과거의 소비 행태와 다른 부분을 짚어내기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이미 작년 1년을 살아내면서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을 택했고, 캠핑과 차박이라는 새로운 여가 문화를 정립했으며, 인테리어를 하는데에도 벌써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2021년에도 단순히 '보복소비'라는 말로 퉁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앞서 다른 장에서 살짝 언급했듯 집에 있는 시간이 증가하고 집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집 안에 들이는 물건에도 변화가 생겼다. 간단히 얘기하면 내가 평소보다 집 안의 물건들을 접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전에는 집에서까지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보였는데 지금은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집에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상황을 넘어 집 자체가 회사이고 학교인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코로나가 생기면서 유독 사용하지 않는 용어 중에 하나가 "워라벨"이다.

어떤 단어를 많이 쓰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의 바램,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런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단어를 많이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건 그런 사회가 실현되었거나, 그럴 얘기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다.


워라밸은 왜 줄어들었을까? 이미 실현되어서? 집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워라밸이 가능해져서?

아마 아닐 것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워라밸의 경계가 무너지고 무뎌졌기 때문이다.


유사한 용어로 "욜로"도 마찬가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만큼 조금 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욜로는 꼭 여행을 통해서만 실천되는 거였던가? 해외여행이 막혔고 그 대신 국내여행, 호캉스도 많이 다녔는데 이상하리만치 욜로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같은 맥락이다.




돌아가서, 가전에 대한 수요를 다시 짚어보자면, 가전 자체에 대한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로 얘기되는 가구가 집 안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가전은 철저하게 실용성에 부합한다.

즉 내가 실제로 문제 없이, 혹은 최고 사양으로 사용하고 싶은 니즈가 반영된 것이다.


작년 한 해 유독 당근마켓에 유튜브 관련 장비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많이 구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장비들이 대부분 고가의 가성비 제품이었다. 유튜브에 보면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왜 고가의 제품을 사는 것일까. 오래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와 오래할 제품이니 이왕이면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듯 꼭 사무와 학습에 필요한 제품 뿐만 아니더라도 내가 앞으로 집에 오래있으면서 자주 접하게 될 것 같으면 다소 고가여도 성능이 좋은 최신의 제품을 구입하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비용이 보복소비, 그러니까 어차피 당분간 해외여행 못 갈거니까, 에서 출발한 지급 가능 비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비용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과 무관하게 나에게 만족을 주는 가치에 대한 투자일 뿐이다.


예를 들면, TV는 어떨까. 나는 최근에 아주 고가의 TV를 구입했다. 내가 가져본 TV중에 아마 가장 비싼 것이 아닐까 싶다. 화면도 무려 60인치를 넘는다. 생각같아서는 80인치대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가격이 두 배가 넘게 차이나는 것을 보고 접었다. 나 역시 '보복소비'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었지만 같이 살고 있는 그 분에게는 통하지 않을 변명이었다...


어쨋든, 나에게 그 TV는 기회비용이 아니니 가치비용, 투자의 개념이었다.

나는 넷플릭스, 왓챠, 유튜브를 구독하고 있으며 거기에 티빙을 이용하고 있고,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넷플릭스 같은 다양한 컨텐츠를 컴퓨터 연결 없이도 볼 수 있는 TV의 신기능이 필요했고 고화질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화면과 화질이 필요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누가 요새 TV를 봐?"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판매하시는 분이나 구매하시는 분이나 다들 무조건 큰 제품을 사라고 당당하게 조언한다. TV가 더이상 지상파, 케이블만 보는 디바이스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도 그렇다. 하다못해 밥솥도 그렇다. 스타일러와 건조기는 요즘 필수품이 되었고 삼성의 '비스포크'와 LG의 '오브제'는 최근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오브제의 슬로건을 보면 "공간인테리어 가전"을 표방하고 나왔다. 지금보면 정말 기가막힌 슬로건이다. 소비자가 중시하는 '공간'에 인테리어를 붙여놨으니. 비스포크 역시 연관 검색어로 '비스포크 인테리어'가 있다. 예전같으면 이런 류의 컬렉션들은 '차별화'를 무기로 내세웠을 것이다. '나만의 맞춤형 디자인 가전' 같은. 그런데 지금 소비자들의 선택 이유를 보면 '인테리어 측면에서의 조화'가 눈에 띈다.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 남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가장 내가 원하는 것으로 접근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관점은 가족 구성원과 무관하게 큰 제품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때 가전 시장에서는 1인가구를 위한 소형제품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아예 집이 좁지 않는 이상 모두 다 갖춰놓고 살기를 원한다. 혼자사는 이 생활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루라도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살자는 마음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로 인해 또 하나 촉발된 민심은, 신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가전에서 사용되는 기술은 늘 출시 제품보다 몇 발작 앞서 있다. 우리가 미래에는 이것까지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기술들 중 많은 부분은 이미 각 기업에서 테스트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의 신기술만이 탑재된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소비자가 익숙해지도록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를 소비자가 오히려 예상보다 빨리 앞당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한다. 인공지능(AI), IOT 같은 기술 영역들을 얼른 써보고 싶은 것이다. 이왕 제품을 구입할 거 가급적 새로운 기술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것 역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TV만해도 매장에서 가서 상담해보면 "아직은 솔직히 8K까지 필요없어요"라는 얘기를 하는 분이 계시던데 물론 그렇다. 8K로 촬영되고 송출되는 컨텐츠는 고작 5%도 안될테니까. 그럼에도 요즘 소비자들은 (여력만 된다면) 8K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매장에서의 단발적 체험이 아니라 내 집에서의 일상적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 집에 있는 시간은 이제 어떻게든 재미있어야 하니까.
















keyword
이전 05화코로나 시대의 "인테리어"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