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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Nov 09. 2022

익숙한 장소의 이방인

머무르고 싶으나 머무를 수 없는 곳 


오랜만에 자대학 축제를 다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축제 마지막 순서로 온 연예인도, 북적북적한 인파도 아니었다. 내가 더 이상 이런 식의 축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대학교 축제라고 해서 다른 지역 행사나 페스티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디서 본 듯한 메뉴를 파는 푸드 트럭, 천막과 부스에서 진행되는 즐길거리, 몇 연예인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무대까지. 뻔한 패턴으로 진행된 축제에 익숙해진 걸까, 이제는 이런 축제에 감흥을 못 느낄 만큼 나이를 먹은 걸까. 이유는 단칼에 설명되지 않겠지만 큰 음악 소리에 설레 하던 예전의 내가 없다는 점은 분명했다.


  싱숭생숭한 내 기분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받고 연예인들의 무대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즐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분명 학교는 아직까지도 내게 익숙한 곳이다. 무대가 진행되는 운동장부터 천막이 즐비한 공터까지, 몇 번이고 지나가면서 눈에 익은 공간이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축제의 장소에서 동 떨어져 있었다. 나는 학교의 이방인이었고, 그곳은 더 이상 내가 머무를 장소가 아님을 느꼈다.


  계속해서 머무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대표적으로 학급이 그러하다. 나이를 먹고 학년이 올라가면 내가 다른 사람 자리를 물려받고 내 자리를 또 다른 사람이 물려받게 된다. 내가 속한 학년, 반, 번호는 는 학교로부터 1년 동안 대여받은 임시 명찰에 불과하다. 그 기간이 지나면 등 떠밀리듯이 또 다른 임시 명찰을 부여받게 되고, 나를 대표하던, 내게 익숙한 것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은 또 어떠한가. 내가 구매하고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지 않는 한 나는 이사를 가야만 하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임대인의 신분으로 내가 머물던 자리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살던 곳을 지나치게 되면, 그곳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변모될 터이다. 같은 도시, 같은 구, 같은 땅에 지어졌고 주소지까지 변함없이 같은 건물이지만 나의 익숙함으로 가득하던 공간은 더 이상 없다.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익숙한 것을 떠나보내는 일을 수없이 반복해왔으면서도 이 자연스러운 순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한한 수명을 가졌기에 나는 무한한 세계를 두고 반복해서 이방인이 될 운명이다. 결국 나는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게 되어 있으며, 돌아보는 모든 순간에 그리움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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