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에서 친해진 사람들이나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을 종종 만날 때가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찐친'에 속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자주 얼굴 보고 살지 않는다. 다들 각자의 삶과 생활 패턴이 있어서 모두가 모이기가 쉬운 일이 아니고, 만남의 주기가 몇 달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만남이 몇 차례 불발되면 자연스레 모임에서 빠지는 사람도 생기고, 아예 모임 자체가 와해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렵사리 모여서 만남이 성사되면 각자의 화젯거리로 소란스럽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지는데, 난 그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되고는 한다. 과연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만날까.
이런 모임의 특징으로는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운데 자주 만나면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평소보다 짧은 주기로 만났을 때 대화 주제가 끊기거나 침묵이 흐르면 생각보다 우리가 그리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두 가지 갈림길에 놓이는데, 어색함을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친한 관계로 발전하거나 점점 연락이 줄어들고 끝내는 연락이 닿지 않게 된다.
모임의 마지막 순간이 떨떠름할 때가 있다. '억텐'을 유지하다가 자리를 파할 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얼굴 맞댄 채 웃음을 짓고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는 노릇이고, 설령 친해졌다고 해도 비대해진 인간관계를 '관리' 해야 할 텐데, 필요 이상으로 노력해서 모임을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과연 간헐적으로 모이는 관계를 노력해서 유지하는 게 맞을까. 자연스레 소멸할 것들을 나는 억지 노력으로 붙잡고 있지는 않을까.
어디까지가 순간에 충실한 것이고 자연스럽게 보내준 것이며, 어느 정도가 억지 노력이고 또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고 그들 중에서 내게 머무르게 되는 사람은 몇 명인가. 어떤 누군가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데, 내게는 남보다 못한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