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일종의 병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깊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평소에 알고 지낸 모습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마음 앓이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을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사랑에 빠진 상태는 정신착란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지 않을 때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사랑 후에 보이는 내 모습은 비정상이다.
사랑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방향이 같다고 해도 감정의 크기까지 똑같지는 않아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연인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대체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바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랑이 질병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면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욱 증상이 악화되어 있을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더 많이 앓는 사람이 관계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랑에 빠지게 한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변한다. 사람의 감정은 가변적이어서 싫었던 것이 좋아지기도 하고 좋았던 것이 싫어질 수도 있다. 사랑을 이루게 하는 감정과 사랑을 지속시키는 감정은 비슷해 보여도 그 결이 달라서, 언젠가 떨림의 자리는 익숙함으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그 수순은 당연하기에 슬플 것도 없으면서도 내 의지로 붙잡아 놓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때도 있다. 사랑은 나도 모르게 시작돼서 나도 모르게 사라진다.
가슴 벅찬 순간들도 일상에 희석되고, 영원할 것만 같은 그리움도 점차 희미해진다. 그것이 미련을 떨쳐버리려는 본능인지 내 감정의 크기가 그 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다. 나는 오늘 할당된 만큼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밀린 빨래를 해치우고 내일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애틋한 감정은 쏟아지는 일상에 떠밀려 점차 스러지는데, 내 보잘것없는 일상에 무너질 만큼 감정은 단단하지 못했나 되묻게 한다.
흘러간 모든 것은 애잔함을 남긴다. 그런 기분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미화일 수도, 흘러간 것을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또다시 반복되리라는 암시일 수도 있다. 사랑 뒤에 찾아오는 감정이, 너무 쉽게 옅어지는 마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랑 뒤에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는 그 모든 순환이, 낙엽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