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감’과 ‘진짜 인정’은 결코 쉽지 않아_마음을 열어주는 공감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감의 표현을 많이 하게 된다. 억지로 한다기보다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원만한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가 느끼는 기분과 생각에 자연스럽게 공감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평소 공감 능력이 좋은 편이라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대체로 잘 맞춰가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감한 만큼 상대에게도 같은 공감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상대를 향한 공감의 표현은 ‘상대가 좋아서’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원래부터 쉽게 공감하는 인간이라, 그게 나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감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만으로도 금세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고, 대화 속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또한 이런 공감의 표현을 했을 때 상대의 행동을 보면서 상대의 성향도 옅게는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눈빛이 환해지며 내 감정에 몰입하고, 어떤 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맞아~’ 하고 넘긴다. 그 작은 차이들이 그 사람의 삶의 결, 감정의 밀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은근히 보여준다. 사람의 성향이나 마음결도 공감의 방식으로 은근히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공감이 쉬운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후자의 대표주자가 한분 있다. 바로 나의 남편이다. 부부 대화 과정에서 이 공감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남편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공감 능력인 것을 스스로 깨닫던 날이다. 이때 우리 사이에 수수께끼가 풀렸다.
남편은 평소 아주 이성적이고, 흔들림이 적고, 감정 기복이 거의 없다. 말하자면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감정이 금세 피어올랐다 금세 꺼지는, 감정 온도가 선명한 사람이다. 우리의 차이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온도가 다르니, 같은 장면을 보아도 전혀 다른 감상을 내놓는다.
서로가 사물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시선이 크게 달라 웃고 넘길 때가 많다. 이 차이 때문에 우리 사이엔 종종 작은 엇박자가 생겨났다. 평소엔 이 차이가 오히려 웃음 포인트가 되지만, 다툼이 생기면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나는 감정에 호소하면서 나의 심정을 우선 알아주길 바라는데, 남편은 그 감정 상태가 이해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감정을 호소하던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지 못하니 포기하고, 감정을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잘 못됐는지를 생각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실제 여태 우리 부부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이 차이로 다툼이 시작되기도 하고, 다툼이 길어지기도 했다. 뭔가 화해를 해도 찝찝한 기분이 남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어떤 날, 남편이 스스로 말했다. “나는 공감 능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이 단순한 고백 하나가, 오랫동안 해석되지 않던 퍼즐을 단번에 맞춰줬다.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을 깊이, 완전하게 공감하는 건 아니다. 내게 벌어진 일이거나 내 가족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떻게 진짜 완벽하게 공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아, 속상하겠구나”, “화가 났겠네”, “그런 기분일까?”라는 어림짐작으로 상대의 감정에 연고를 살짝 얹는 것뿐이다. 그 작은 끄트머리가 대화의 문을 부드럽게 연다.
남편을 관찰해 보니, 그는 그 끄트머리를 던지는 과정이 아예 없었다. 기쁨, 슬픔, 화남, 미안함, 죄책감, 연민, 사랑하는 등 갖가지 감정은 다 잘 느끼지만 ‘남의 의견이나 감정에 대해 이입’하는 포인트가 약했다. 그래서 TV를 보다가 “저 사람이라면 지금 어떤 마음일까?”라고 묻는 내 질문에 시큰둥했던 것이다. 사실 감정 유추가 어렵기 때문이었지, 대답이 시큰둥했던 것이 아니었다.
공감 능력이 약한 것은 결코 나쁘거나 결함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영역이다. 다만 상대의 표현에 대해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과정이 느리고 상대의 감정 상태를 유추하는 능력이 미약할 뿐이지, 공감 능력 정도가 결코 선과 악, 옳고 그름은 아니다.
누군가는 감정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누군가는 이성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단지 그 차이가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