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글을 쓴다는 건 여전히 내게 어려운 일이다. 소재를 정해놓고 서론을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멍 때리거나, 소재조차 정하지 못해 일주일 동안 글에 손도 못 대기도 했다. 또 이렇게 어려움 끝에 완성된 글을 읽어보면, 특정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수학, 과학 같은 거나 배웠지 '글을 쓰는 방법' 따위는 배워본 적 없는 공대생이니 어쩌면 이런 시련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좋은 글로 내 마음을 치유하고,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울림을 주고 싶다. 이런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글을 꾸준히 쓰게 해주는 동기부여, 그리고 글(특히 에세이나 서평)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는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는 이 조건에 완벽히 부합했다. 글쓰기가 왜 선택이 아닌 필수인지, 어떻게 하면 좋은 소재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등 여러 파트에서 내 가려운 부분들을 긁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책의 프롤로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직장인의 삶이 힘들어 더 버틸 수 없었을 때, 난 '글쓰기'라는 또 다른 생명줄을 찾았다. 희미해져 가는 나를 찾을 수 있었고, 직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되찾았으며, 내 글이 책과 강연 콘텐츠가 돼 돈도 벌어다 주고 있다. 커피가 직장인의 생명수라면, 글쓰기를 직장인의 생명줄이라 말하는 이유다.
- 스테르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p.7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던 이유와 비슷해 공감이 되었다. 입대 후 한동안은 '군인'이라는 새로운 페르소나에 적응하지 못해 힘겨웠다. 그러던 중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고, 심란했던 마음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전역할 때쯤 돼서 보니 내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어 있었다. 이것만으로 글쓰기를 시작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첫 챕터에서는 글쓰기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좋지만, 먼저 본인이 글을 쓰고 싶은 이유를 정확히 알고 써야 지속 가능한, 올바른 방식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글쓰기는 방법보다 이유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필력이나 기교보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를 규명하는 게 더 시급하다. '왜'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목표와 목적은 엄연히 구분된다.
- 스테르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p.45
앞에서 언급했듯이 내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분명 쓰고 싶은 명확한 이유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사회에 나오니 초심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예전 같지 않았고, 투자하는 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그래서 초심을 찾기 위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를 글에 담기도 했다.(글 최하단 참고) 이렇게 내 글쓰기의 목적을 글로 정리해 놓으니 글쓰기를 시작하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올 때 글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잡기도 좋았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 중에는 내 하루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일 뿐인데, 글로 쓸 만한 게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작가는 이런 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글쓰기의 시작은 '나는 평범하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니면 평범한 걸 특별하게 표현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스테르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p.91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특별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매일매일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겪고 있다 생각할 지라도, 그 안에도 분명 글로 풀어낼 만한 소재들이 있다. 또, 사람마다 몸담고 있는 분야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전혀 모르던 미지의 영역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요즘 좋은 호응을 얻고 있는 글이나 만화 등의 콘텐츠들을 살펴보면 직장 생활, 대학 생활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들이 많다. 그러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자. 분명 나만 쓸 수 있는, 반짝이는 이야기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글을 써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떤 장르의 글을 쓰면 좋을지 고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직장인이 쓰기 좋은 장르 3개를 소개한다. 업세이, 에세이, 그리고 취미에 대한 글쓰기가 그것이다. 업세이는 업+에세이의 줄임말로, 자신의 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다. 직장인의 경우 자신의 생계가 달린 분야이므로 가장 넓고 깊은 내용을 쓸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자신의 업을 객관적으로, 또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세이는 일기에 자기반성, 그리고 역지사지를 넣으면 된다. 쉽게 말해 작가의 통찰과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학생이라 아쉽게도 업세이는 쓸 수 없지만, 학생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본 에세이는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취미와 관련된 글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것이므로 쓰는 것이 어렵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는 장점이 있다. 나에게는 서평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핵심은 이 최소 3가지 종류의 글쓰기를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명 '문어발식 글쓰기'를 저자는 추천하는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면 한 장르에서 막혀도 다른 장르를 쓸 수 있고, 또 업세이를 쓰다가 에세이의 영감을 얻는 등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나의 글에만 몰입하는 편이었는데, 여기서 막히면 글쓰기가 멈춰 버렸다. 문어발식 글쓰기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는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동시에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글을 써야 할 동기를 얻고, 어떻게 소재를 정할지 힌트를 얻었다면, 다음은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글의 시작일 것이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저자는 사전적 정의나 명언 활용하기, 재밌는 말로 시작하기, 경험 혹은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 인용하기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또한, 글을 한 번에 완벽하게 쓰기보다는 쓰면서 생각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는 나도 글을 쓰면서 느꼈던 것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한때 나는 글은 완벽한 목차와 계획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시작하기가 너무나 힘들었고, 쓰면서 목차를 수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만 제목에 적어두고, 그다음은 쓰면서 수정한다. 어딜 가나 계획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요즘, 글쓰기만큼은 비교적 무계획이 가능해서 좋다.
또 하나 깨달음을 얻은 건 퇴고에 대해서였다. 저자는 퇴고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퇴고는 죽은 글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퇴고의 중요성을 제대로 안다면 쓸 때부터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글은 천 번을 고쳐도 완벽해질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을 뿐이다.
-스테르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p.205
글을 쓰고 나면 뿌듯한 기분도 들고, 다시 읽기 뭔가 부끄러워서 지금까지는 퇴고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었는데, 앞으로는 퇴고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여러 번 소리 내서 읽어보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읽어보면서 말이다.
마지막 문단은 '작가가 되기 전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다. 주요 내용은 글을 쓰기 좋은 플랫폼(책에선 브런치를 적극 추천한다.), 글쓰기를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지, 그리고 일명 '글럼프' 극복과 내가 쓴 글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이 중 나에게 아프게 다가왔던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내 영역 안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소득 없는 사투다. 내 대상은 우물 밖이 돼야 한다. 그게 진정한 실력이다. 주위를 벗어나 저 세상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를 전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범위를 넓혀 고민할 때 보다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그게 진짜 '선하고 강한 영향력'이다.
- 스테르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p.225
요약하자면 지인들에게 자랑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여기서 뜨끔했다. 책을 출간한 것도 아니고 고작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셀프 브랜딩, 혹은 자기 PR인 줄 알았다. 하지만, 드러'내는' 것과 드러'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부터라도 글을 쓴다고 먼저 말하는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 더 좋은 글을 많이 써 많은 사람들에게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전파해야겠다.
책을 덮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글을 쓰면서 놓치고 있던 점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래도 비교적 빨리 깨달은 편이니, 이 책에 나온 여러 방법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결국 독서의 가치는 읽는 것이 아닌 실천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이 책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글쓰기라는 행위의 필요성을 깨닫고, 자신의 글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루하고, 무미건조해 보였던 인생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나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구라도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멋지게 살아가고, 살아내고, 살아지기 위해서 말이다. 또 하나, 살아지는 존재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라지기 전에 글로 우리 자신을 남겨놔야 하는 이유이다.
-스테르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