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불안을 먹고 산다
“모두의 의견을 정리한 끝에, 제목은 이렇게 짓기로 했습니다.”
과연 ‘모두’일까?
작가들은 모르는 편집자의 속사정.
속을 쓰리게 만드는 사정들에는 도깨비가 나서도 어려울 듯한 촉박한 일정, 작가의 갑작스러운 분노, 도통 굴러가지 않는 머릿속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속상한 것을 하나 추려보자면, ‘제목’이다.
아무리 원고를 여러 번 읽고, 목차를 다듬고, 콘셉트를 잡아냈다고 해도 제목만은 지을 수 없을 때.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가 건네주는 명부(名付)를 무작정 받아야 했던 망자들 같은 마음이 들 때. 그때가 유독 서럽다.
-“잘 팔리겠어?”
-“모르겠는데요.”
차라리 울컥해서 이렇게 답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편집자는 불안을 먹고 산다. 그리고 그 불안은 대개 담당 편집자가 아닌, 그 책을 만들도록 지시한 윗사람들에게서 온다. 돈을 낸 사람들이 돈을 못 벌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기획편집이라는 것도 결국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줘야 하는 사장이 결정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기껏 책을 내라고 해서 온종일 원고를 붙들고 있는데, 어느 순간 책의 생살여탈권을 쥔 사람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불안증세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편집자를 괴롭히는 것은 ‘간섭’이다. 간섭의 정의는 ‘아무리 경험치가 쌓일 때까지는 노련한 상사나 사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 때’다.
‘편집자가 아닌 누군가가 제목을 짓는 것’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회의로든 통보로든 편집자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책의 이름을 하사받는다(사실 윗사람들의 의지가 확고하면 회의도 통보의 장이 된다). 하사받을 때 곁들여지는 말은 대개 “○○씨가 지은 제목은 영 아니더라.”다. 뭐가 아닐까. 하여튼 제목을 지은 계기는 다양하지만, 결론은 “이래야 책이 잘 팔릴 것 같아서.”다. 개인적으로 이럴 때는, 편집자로서 내가 가진 능력이 부족한 탓에 누군가가 쥐여준 제목을 써야 한다고 소위 ‘퉁친다.’ 하지만 서러운 건 서러운 것. 책이 인쇄되어 손 안에 들어와도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책에 원래 적었던 제목이 아닌 낯선 제목이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작가는 반겨줄까 걱정할까?
작가에게 제목을 알려주면서 이런 고민을 할 때가 많다. 대부분의 작가는 출판사의 의견을 기쁘게 받아들여 준다. 고마운 일이다. 다만 “편집자님이 정하신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 뜨끔할 뿐. 그럴 때는 에둘러 “다 같이 고민해서 결정한 거예요.”라고 말한다.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많이 들었던 소리는 “경기가 안 좋아서”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만 사 봐서” 등이었다. 어느 업계나 사장의 하소연을 듣겠지만, 매주 듣다 보면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사장의 부담감을 알지 못하는 일개 직장인의 볼멘소리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이 책은 잘 팔릴 거야.”라고 자신만만하던 사장이 어느 순간 그 책의 출간을 걱정할 때. 그 걱정이 불안이 되고, 사장은 불안에 사로잡혀 편집자의 의견을 저버리고 자신이 내세운 제목을 고집한다. 편집자는 부서져 버린 제 생각에 낙담하고, 책에 대한 애정을 잃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전혀 좋지 않겠지. 그러니 제발 제목만은 내가 짓게 해주세요.
커버 사진: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