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이게 이렇게 쓰여 있었나?”
MBC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만화 속 세계에 사는 ‘은단오’라는 18세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우리에게는 여자 주인공이지만, 만화책에서는 그저 엑스트라일 뿐인 그. 작가가 정해놓은 대로 살아야 하는 삶을 거부하고 단오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움직인다. 과연 단오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출처: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 홈페이지(http://www.imbc.com/broad/tv/drama/extraordinaryyou/index.html)
작가의 처지에서 ‘단오’라는 존재는 어떻게 다가올까? 드라마상에서는 단오의 끈질긴 노력으로 몇몇 장면의 콘티가 바뀌었다(여기서는 원작 웹툰 <어쩌다 발견한 7월>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겠다). 즉, 어느 날 만화책을 펴보았는데 작가도 모르는 사이에 별 볼 일 없던 이야깃거리가 원고 전체의 방향을 틀어버린 셈이다.
글을 쓰거나 다듬다 보면, 마치 단오가 마법을 부린 듯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어라, 이게 이렇게 쓰여 있었나?” 하고 놀랄 때다. 작가 중에는 방향키를 놓치지 않으려 문단마다 무엇을 쓸지 키워드를 적어놓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리 단단히 준비한다 해도 글이 자신의 의도와 달라지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이럴 때 나쁜 경우라면 글이 산으로 가고, 좋은 경우라면 글이 글쓴이를 이끌고 순항한다.
좋든 나쁘든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작가가 다시 방향키를 잡고 원하던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드라마에서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존재인 ‘작가’와 단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것일 것이다.
단오의 존재는 작가에게 절대로 달갑지 않다.
좋은 방향으로 글이 바뀌어 가더라도 나중에 원고 전체를 다 읽었을 때 경계선 같은 지점들이 존재한다. 흐름이 뚝뚝 끊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고는 무척 중요하다. 원고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단오’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결정해야 한다. 단오를 글에서 빼버릴지, 아니면 단오를 기준으로 글을 다시 만들어갈지.
어느 정도 써놓은 글을 뒤엎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어라, 이렇게 쓴 게 오히려 낫네.” 하는 생각이 든다면, 개인적으로 글을 다시 쓰는 것과 같은 힘을 들여야 하는 이 행위를 추천한다(마감에 쫓기지 않는다면). 잘 쓰면 잘 쓴 대로 만족할 것이고, 잘못 쓴다고 해도 중간중간 방향을 잡아가며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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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글이 이리저리 튀지 않도록 고삐를 조이는 것과 동시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는 것. 따로 그 이야기를 빼더라도 원고에 큰 영향이 없으면 그것이 군더더기다.
그렇다면 ‘엑스트라’인 단오는 군더더기일까? 단오는 엑스트라라고는 하지만 만화 속 세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이 이야기를 펼쳐가는 데 도움을 주고, 단오가 빠지면 공에 바람이 빠진 듯 엉성해지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다만 사람인 단오 입장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글에 군더더기가 많으면 작가가 균형을 잃는다. 군더더기에 집착하다가 원고가 엉뚱한 쪽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편집자가 원고를 교정할 때 “삭제하는 게 어떨까요?” 하는 메시지와 함께 중간 줄을 쭉쭉 그어준 경험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한편, 독자에게 부연 설명을 덧붙여야겠다는 작가의 배려가 가끔은 군더더기를 만든다. 배려심은 버리고 냉정하게 그 부분이 글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의심해보자. 다소 짧더라도 핵심만 전하는 것이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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