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관한 문제를 다룬 한 다큐 프로그램이 화제다.
지난달,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한 신년 특집 교육 대기획 ‘다시, 학교’의 마지막 주제는 ‘문해력’이었다. 지식 주입에 치중하는 기존 교육 방식이 학생들의 읽기 능력에 미친 파장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단어가 어려우니 받아쓰기 시험이 어렵고, 나아가 교과서를 읽는 것이 고역이 된다는 아이들….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출처: EBS 다큐프라임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ebs_docu/221761723041)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해력(文解力)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자세히 풀어내자면 ‘글을 읽고 맥락을 추론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해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문제, 즉 글을 제대로 읽기 어려워하는 일은 어느 세대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책을 즐겨 읽는 독자에게서도.
몇 년 전, 어느 독자에게 오탈자에 관한 문의가 왔다.
시간이 꽤 지나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순전히’(아니면 ‘온전히’였을 수도)가 오타라며 다른 단어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독서를 깨나 즐긴다는 성인 독자로 자신을 소개했는데,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원서의 의미를 살린 ‘순전히’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독자가 전화로 다시 문의해오면 어쩌지 고민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어려운 말을 썼던 것일까.
“이 말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출판사에 들어와 교정을 진행하면서 간간이 듣는 소리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사수나 편집장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단어들은 주로 고사성어·사자성어·한자어로 된 말이었다. 학창 시절에 한문 수업을 제일 좋아했던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하물며 한자를 싫어한 사람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단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편집장은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다듬어보면 어떨까 하고 나에게 다시 물어왔다. 이 말을 덧붙이면서. “요새 독자들은 이런 말도 어려워하더라고.”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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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에게는 문장을 풀어쓰는 습관이 생겼다.
원고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독자에게 어려울 만한 부분이면 최대한 풀어썼다. 어린이나 실용 분야 도서의 경우에는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원고를 들여다봤던 것 같다.
과학이나 경제경영 같은 전문 지식을 다루는 도서는 함부로 손댈 수가 없다. 이럴 때는 단어 주변을 정리했다. 번역투는 첫눈에 잘 읽힐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풀어놓으면 같은 뜻이라도 풀어 쓴 쪽이 훨씬 쉽게 읽혔다. 또 한자어의 경우에는 옆에 작게 한자를, 외래어 같은 경우에는 알파벳을 적어서 독자가 뜻을 헤아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주석을 붙여 놓기도 했다. ‘편집자주’는 편집자가 고심했던 흔적이다.
어떨 때는 낚시를 가르치지 않고 물고기만 잔뜩 가져다주는 사람처럼 지나치게 친절해져서 문제였다. 실용 도서의 경우에는 그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 사기 마련인데(빵 만들기 책이라면 베이킹 재료를 대강 아는 것처럼), 아예 빵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사는 것처럼 주석을 잔뜩 달았다가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풀어쓰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까.’ 늘 이 고민을 반복한다.
읽기 어려운 책이 문제라는 건 아니다. 책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니까.
좋다고는 하는데, 유독 읽기 어려웠던 책이 다들 하나씩 있지 않은가? 그 책이 왜 어려운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소한 단어가 원인일 때가 종종 있다.
단어를 배워 어휘력을 늘려야 하는 사람은 다큐 프로그램에 나온 학생만이 아니다. 오탈자를 물어왔던 독자도, 물론 나도 더 잘 읽기 위해 낱말을 배우면 좋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는 차근차근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쉬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연히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책은 기본적으로 읽기 쉽다.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책이 낚시를 배워 직접 물고기를 낚는 과정이다.
반면 우리에게 읽기 쉬운 책은 직접 낚시질을 하는 것으로 보여도, 어떨 때는 누군가 잡아 놓은 물고기를 손쉽게 얻는 것일 수도 있다. 낚시를 배우려면 한동안의 기다림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커버 사진: Photo by Jorge Ibane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