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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Jan 29. 2021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맞지만 영 어색한 외래어들

아우라가 아니라 ‘오라’라고요?

원고를 교정하다 보면, 으레 헷갈리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보게 된다. 그중 외래어는 제대로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도 웬만하면 모두 사전을 거치는 편이다. 물론 고유어나 한자어 중에도 철자를 잘못 알고 있던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내가 외래어에 특히 신경을 쓰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그 이유 중에 하나로 ‘오라’가 있다. 알파벳으로 ‘aura’라고 쓰는 그 단어다.


자기애 끝판왕 이영준에게는 '아우라'가 아니라 '오라'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출처: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아우라’의 실체를 처음 확인했을 때의 충격이란….

주변을 돌아보니 실체를 알고 있던 사람도 꽤 있었다. ‘오라’가 맞다고 하니 그렇게 쓰긴 하는데 마음 한구석이 영 찝찝했다. 그래서 오라 옆에 살그머니 ‘aura’를 덧붙여놓았다. 대개 오라는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 어떤 내용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가끔 쓰던 표현 중 하나였다. 책에 한두 번 등장하고 마는 단어라, 큰 문제가 없었는데…. 몇 년 전 나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외래어를 만났다.

  



피아르. PR을 한글로 풀어쓰면 이렇다.

‘피알’이 아니라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당시 상사는 PR을 ‘피아르’로 풀어쓰기를 바랐다. 그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네?!” 하고 내 눈이 가능한 한 크게 둥그레졌다.

지금보다 더 초짜였을 시절, 나는 단어 하나를 두고 상사를 설득했다. “이걸 독자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상사는 단호했다. 한글로 풀어써야 영어에 서툰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책의 독자층을 생각해보건대,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책에는 피아르가 꽤 자주 등장한다고요!

  

원고에서 자신을 내던지며 선전하는 그 단어와 어쨌건 타협을 봐야 했다.

나는 PR을 본문 글씨로 넣고, 그 옆에 작게 ‘피아르’라고 덧붙였다. 그 정도로 타협을 보면서도 마음이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지금은 PR은 그냥 PR로 쓰는 편이다. 영어 단어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진 것도 있고, ‘피아르’를 끼워 넣는 게 오히려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R이 ‘아르’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되면, R을 가진 외래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Rh는 ‘아르에이치’가 되고, OMR은 ‘오엠아르’가 된다. 엄청난 뒷북이지만, 신입 때의 충격적인 기억을 되살려보며 적어본다.




외래어의 가장 큰 난관은 ‘지명’이 아닐까.

가끔 동아시아나 남아프리카 같은 ‘낯선’ 지역을 다룬 책을 편집하다 보면, 지명이 골칫거리가 되곤 한다. 그 나라의 중심 도시를 떠나 산이나 강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만나는 지역은 당연히 그 지명이 표준국어대사전은 물론 지식백과에도 없을 때가 많다. 이때는 섣불리 로마자표기법으로 지명을 유추하지 말고, 작가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작가가 애초에 한글로 지명을 써놓았다면 그걸 따르면 되지 않을까?

대개 작가는 한글을 색다르게 조합해놓고는 “현지인들은 대개 이렇게 발음해요.” “여행자들은 이곳을 보통 이렇게 불러요.”라고 말한다. 그대로 지키면 상관없지만, 왜 같은 지역인데 1장과 2장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르죠, 작가님? 왜 여기서는 중간에 ‘뜨’라고 쓰고, 다음에는 ‘트’라고 쓴 거죠, 작가님?

 

굳이 바꾸지 말고, 이렇게 써도 되지 않아요?

가끔 누군가 물을 때면,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괜히 뜨끔해서 단어 하나에 트집을 잡는 게 아닐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맞다고 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쓰는 것처럼. ‘할로윈’이 ‘핼러윈’이 아니라, 아직 ‘할로윈’인 것처럼.

사실 외래어표기법에 맞춰서 교정을 보았다가 까인 적도 많다. 디캐프리오는 아니지만, 어느 외국배우 이름을 외래어표기법에 맞춰 공들여 바꿔 놓았다가 바로 수정 지시를 받은 일도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외래어표기법대로 써도 좋고, 상황에 따라 통용되는 말로 써도 그만이다.

일러두기에 이에 대해 적어두고 독자에게 미리 알려주면 더더욱 좋고. 그리고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그저 허둥대는 사람일 뿐이다. 그저 이 글은 ‘오라’를 오랜만에 만났기에 벌어진 일이다.



커버 사진: Photo by Jason Leu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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