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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Mar 15. 2021

지난한 밤을 건너는 어떤 코뿔소처럼

『긴긴밤』을 읽고

동화의 매력은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나는 우선 이렇게 생각한다.

오랜만에 읽은 동화, 『긴긴밤』(루리 글·그림, 문학동네, 2021년)은 그런 점에서 동화의 매력을 듬뿍 얻기에 충분했다.


출처: 『긴긴밤』(문학동네, 2021년)


코뿔소 ‘노든’을 따라 전개되는 이 동화는 초원과 사막 등이 이어진 미지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라난 노든은 코끼리와 지내는 것에 불편함 없이 ‘코끼리’로서 살아간다. 어느 동물보다 강했지만, 섣불리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는 현명한 코끼리를 동경했다. 그들처럼 크고 기다란 코를 가지지 않았지만, ‘노든은 자신이 코뿔소의 겉모습을 가진 코끼리라고 생각했다.’(13쪽)  

 

그것은 코뿔소임에도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에 머무를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까마귀들이 물어다 준 바깥세상의 이야기들은 코끼리로서의 노든의 가치관에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바깥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럴 때마다 노든은 코끼리처럼 생각하려 들었다. 코끼리 고아원이냐, 바깥세상이냐 선택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코끼리답게, 지혜롭고 현명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무모한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더 멀리 보고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뇌었다. (15쪽)     


노든은 오랜 고민 끝에 바깥세상을 선택한다. 코끼리로서 살아온 그에게 코뿔소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노든이 평화로운 생활을 뒤로하고 넓은 초원으로 발을 내디디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든이 마주한 동물과 인간들, 풍경과 사건들은 노든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다.

      

노든의 삶은 인간의 삶, 인생과 닮은 점이 많다. 필연적으로 선택의 순간에 놓이지만, 선택과 상관없이 우연히 사건에 휘말린다는 점이 그러하다.

노든 역시 불가피한 상황에 부딪히며, 원치 않는 결과를 얻는다. 이후 노든은 자책하며 그날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방황하기도 한다. ‘긴긴밤’이라는 말은 아픔을 간직한 채로 잠들어야 했을 노든의 밤을 상징한다. 이 긴긴밤을 해결해줄 열쇠는 코뿔소 앙가부가 노든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어주는 것이었다. 아픔을 터놓고 위로를 받으며 치유해가는 것이다.  

    

이 책의 스포는 띠지와 표지에 가득하다.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라는 심사평 문구는 노든이 누군가와 함께 다시 일어서리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가족을 잃은 노든의 앞에는 앙가부처럼 새로운 동물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중에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작가가 언급한, 치쿠와 윔보가 있다.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를 전하는 ‘나’가 있다. ‘나’와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은 어떠한 관계일까.     


‘나’에 대해서는 뒤표지를 보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불운의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그것이다.

어린 펭귄은 어떻게 치쿠, 윔보, 노든을 만나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절망에 빠진 노든에게 어린 펭귄은 과연 어떠한 의미였을까? 그리고 노든의 긴긴밤은 과연 평온해졌을까?     


Photo by Nadine Redlich on Unsplash


홀로 살아가는 듯해도, 홀로 사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그러한 ‘연대감’을 코뿔소 노든을 통해 전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점점 희박해진 탓에, 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그것을 나는 이 동화를 읽어가는 내내 순수한 마음으로 기대했다.

고통과 슬픔, 좌절이 반복되는 그의 삶에도 치유와 공감, 행복이 등장한다. 그것은 노든이 만난 동물들과 노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서로를 아끼는 지지와 응원이다. 몸이 불편한 코끼리를 다른 코끼리가 도왔던 것처럼, 앙가부가 노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처럼, 불운의 알을 지켜준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처럼.



커버 사진: Photo by Damian Patkows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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