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애쓰는 게 당연해졌다
나는 늘 ‘조금만 더’를 기준으로 살아왔다.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잘해보자.
그 말들은 나를 앞으로 움직이게 했지만,
동시에 제자리 걸음이기도 했다.
애쓰는 것이 멈춤보다 안전했고,
멈추는 것은 곧 포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애씀은 ..
어느새 나의 태도가 아니라 나의 성격이 되었다.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함. 또는 그런 일.
애쓰는 게 당연해지자,
노력의 이유는 점점 희미해져갔다.
왜 시작했는지보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다보니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못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만 남았다.
애씀은 열정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불안의 또 다른 모습이 되어 나를 밀어붙였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괜찮아 보였다.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
그 이미지에 스스로를 맞추다 보니,
힘들다는 말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도움을 받는 일은 능력 부족 같았고,
쉬는 선택은 용기 없는 행동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혼자 애썼고,
조용하게 긴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애쓰는 나를 가장
당연하게 여긴 사람이 나 자신이라니.
그 동안 나를 방치하며 산 것 같아 내 자신에게 참 미안해진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나에게만은 늘 더 요구했다.
이미 충분히 해냈다는 사실보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쓰지 않는 날의 나는 늘 변명해야 했고,
애쓰는 날의 나는 칭찬 없이도 계속해야 했다.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노력하지 않는 나는 텅 빈 사람일까?
문뜩, 먼 하늘을 올려봤다.
그 동안 애씀 없이도 존재하는 나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40대가 시작되면서 막 깨달았다.
이제는 애씀을 삶의 전부로 두지 않으려 한다.
애쓰는 날도 있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
그저 살아낸 것만으로 충분한 날을 인정하려 한다.
애씀은 선택일 때 더 의미가 있고,
강요가 될 때는 나를 더욱 소모시킨다.
오늘부터 더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덜 무너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는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를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