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미쓴 일단 해봐 Jun 22. 2021

답답해서 나갔다가 부동산을 계약했다

추석 연휴에 계약서 쓴 이야기


어른이 되었다.

이 느낌을 받은 이유는

아이가 태어난 후, 내 감정 때문이었다.


더없이 행복했지만, 더없이 힘들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마음과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고 제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건지 신기했다.

극단적인 두 갈래의 감정이 내 마음속에 동시에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것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단순한 옳고 그름의 시기가 끝난 것이다.


작년, 코로나 직후에는

오롯이 아이들하고만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어려웠다.

갈 곳도 없었다.

키즈카페는 문을 닫았고, 자주 가던 식당은 가기가 두렵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건만

[24시간 x 60일]을 함께 있을 때에는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얘들아 미안해)

아이들은 한시도 엄마 아빠를 쉬게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밥 할 시간도..

아내가 한동안 재택근무로 함께 있어주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쨌든 코로나는 가족만의 시간을 점점 늘려준다.




지난 추석 연휴였다.

무려 5일이라는 휴일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특히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둘이서만 육아를 하는 엄마 아빠들에게는 더욱더.

4일째 아침,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자기야 내가 가정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4시간만 쓰고 와도 될까?"

"왜? 답답해? 부동산 다녀오려고? 더 늦게 와도 돼~ ㅎㅎ"

"아니야! 4시간이면 될 것 같아. 재개발 공부하다 보니 상계동에 한 번 가보고 싶은데

가는데 1시간, 오는데 1시간, 가서 돌아다니는 거 2시간 이렇게."

"명절이라 부동산 닫았을 텐데?"

"그냥 동네 지리 익히러 가는 거지 뭐~"


당시 나는 재개발에 대해 공부 중이었다.

이미 다른 투자 물건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산 규모는 매우 겸손한, '어쩌다 다주택자' 상태였다.

그런데 부동산 제도가 바뀌며 다주택자 취득세가 크게 늘어났다.


재개발 공부를 해보면, 일정 조건을 갖춘

재개발구역의 토지 또는 무허가주택에도 훗날 아파트 입주권이 나온다.

토지의 취득세는 4.6%, 무허가주택의 취득세는 4.4% 로

다주택자 취득세 13.4%에 비해 매우 낮다.

그래서 다음 투자 방향으로

재개발구역 내 토지 또는 무허가주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재개발은 잘못 들어가면

10년, 15년, 그 이상도 걸릴 수도 있고

중간에 아예 엎어질 수도 있다.

안정적인 단계에 진입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데,

비교적 소액으로 들어갈만한 곳 중에

상계뉴타운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시작은 그냥 산책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이왕 걸어 다니는 거 부동산 블로그와 유튜브에 나온 곳들을 가보고 싶었다.

상계동 골목길은 산책하기에 좋았다.

산으로 둘러싸여 공기도 맑고 골목길도 정겨웠다.

한편으로는 재개발이 되어 사라질 동네라고 생각하니

산책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했다.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온 김에 부동산 몇 군데만 가보고 싶었다.

잘 찾아보니 이게 웬일, 문을 연 곳이 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깜짝이야 어떻게 오셨어요?"

"동네 보러 왔다가 문이 열려있길래 들어와 봤습니다."

"하하 젊은 사람이 부지런도 하네~ 명절인데..

 저는 잠깐 사무실에 청소하러 나온 거예요."

"죄송합니다^^ 혹시 무허가건물 매물이 있을까요?"

"딱 하나 있어요. 이렇게까지 오셨으니 소개해드려야죠."


그날 부동산 세 곳을 방문했고,

그중 두 곳에서 매물 소개를 받았다.

한 곳은 아예 매물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시세 파악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방문하고 나니 여러가지를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부동산이 소개해준 매물은 시세보다 저렴했다.


그래도 혹시나 더 싸게 살 수 있을까 싶어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늘 뵌 사람입니다. 쉬는 날인데 친절히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현금 보유가 모자라서 혹시 2천 정도 조정이 가능할지 문의드립니다."


하루가 지나도 답이 없다.

몇 차례 전화를 걸어서 겨우 통화가 되었다. 대뜸 첫마디,

"이거는 그렇게 못 깎는 물건이에요~ 다른 거 알아보세요!"


욕쟁이 할머니 맛집에 온 것 같은,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에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 가격에 할게요!!"


알고 보니 이 물건은,

나에게 "매물이 없다"고 말했던 부동산의 이었다.

쉬는 날 청소하느라 잠깐 문을 열었던 그분이

다른 부동산의 것을 연결시켜 준 것이었다.

'아 숨겨놓은 매물이었구나'

뭔가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확실하기만 하면 정말 좋은 물건이다.

계속 연락을 시도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시작되어 나는 결국 이 매물을 계약했다.

한 달 뒤에 잔금까지 완료하였다.


그 확신은 어디에서 왔을까? 잘은 모르겠다.

다음 명절에 부동산에 또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을 때, 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다


얼떨결에 또 한 번의 투자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재개발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고, 사고 싶은 물건 후보지가 대강이라도 있기는 했지만,

그 물건을 찾은 건 분명 행운이었다.


집에 있기 답답해서 나갔다가, 계약까지 이르렀다.

그날도, 오늘도 뜻하지 않게 주어진 행운에 항상 감사한다.


투자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는 없으므로.

지금도 보유 중인 이 물건은 열심히 시세 상승 중이다.






재개발구역의 무허가건물 매수는 주의할 점이 많다.


무허가건물이 정말 입주권이 나오는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1989년 1월의 무허가건물 확인원, 토지 등기부등본, 서울시 항공지도 확인을 거쳐

조합에 중복 소유까지 확인을 마쳤다.

재개발 전문 부동산을 통해 번지수를 알려주고 크로스체크까지 했다.

당연히 매매계약서에도 '입주권이 나올' 것을 명시했다.

작가의 이전글 2천만원으로 30억 벌었다는 유튜브를 보는 솔직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