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미쓴 일단 해봐 Jan 07. 2022

606호 고시원 방문을 연 순간

직장인 투잡 실패기 :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는게 이런거구나

고시원 창업으로 4개월 동안 4천만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피눈물 나는 실패 경험이지만,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기 위해 지난 시간을 복기합니다.


하늘이 노랗던 순간은 고시원 방의 인터넷-TV를 설치하는 날에 찾아왔다.

회사에는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고시원에 있었다.


고시원 사업자간 매수/매도는

전 사업자가 세팅해놓은 시설을 그대로 인수하는 포괄양수도 계약을 맺는다.

인터넷과 전화로 KT에 월 18만원,

케이블티비로 월 6만원, TV 수신료로 월 8만원까지

총 32만원을 납부하고 있었다.


아무리 방이 많은 고시원이지만 과한 비용인 것 같았다.

여러 업체를 통해 견적을 받기 시작했다.

가정집에서 인터넷을 교체해도 약정기간에 따라 현금 수십만원을 사은품으로 준다.

고시원처럼 방이 많은 곳은 현금 500만원을 제안받기도 한다.

나는 사은품 500만원 대신 월 요금 할인으로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래서 월 요금을 11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견적방문과 현장조사, 랜선공사를 거쳐서 마침내 호실별 셋톱박스 설치공사를 하는 날이 왔다.

문자를 통해 부지런히 입실자분들께 공사 날짜를 알렸다.

공사 시간대에 방에 없는 분들께도 설치 허락을 받았는데,

유독 몇 개의 호실에서는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답이 오지 않았다.


어쨌든 날짜가 되어 설치 공사를 시작했고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 시작한 공사는 망을 끌어오고, 허브에서 방으로 연결된 랜선에

방마다 셋톱박스를 설치하고 세팅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수십개의 방을 일일이 설치를 한다.



오후 3시가 다 되어서 4층, 5층을 거쳐 6층까지 대부분의 방에 설치를 마쳤는데,

입실자 3명이 끝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 있다고 확신했던 이유는 며칠전까지 입실료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인수받은 리스트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있고

두 달동안 내 통장에 그 분들이 입금한 내역이 있었다.

입실계약서의 전화번호가 약간 뭉개져서 써있기는 했다.

헷갈릴만한 번호를 다른 숫자로 바꾸어서 문자와 전화를 보내보았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없는 번호도 아니고,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을 하러오신 기사님들도 복귀를 하실 시간이 되었다.

"혹시 사람 없는거 아니에요?"

"며칠전까지 입금이 되던 분들이에요, 바쁜 일이 있으신가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는게 어떨까요..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그럼 30분만 더 있어보겠습니다"


안절부절하며 전화기를 들고 속만 썩이던 순간,

기사님 한 분이 문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사장님 여기 문은 잠겨있는 것 같지않은데요? 열어볼까요?"

라고 말하며 손잡이를 돌리는 찰나,


방 문이 열렸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빈 방이었다.


방이 비어있다는 것은 이 사업장의 매출이 증발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사람 한 명을 채우는 일은 상상보다 훨씬 힘들다.


앞이 캄캄했다.

분명히 며칠 전에 입실료를 받은 방인데.. 또 이상한 점이 있다.

사람이 살다가 나간 느낌이 아니었다.


고시원을 몇 달 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있다가 나간 곳은 분명 흔적이 있다.

체취가 남아있거나 쓰레기나 먼지가 굴러다니거나

쓰다가 버리고 간 물건들, 하다못해 비닐봉투라도 있다.

정 아무것도 없으면 침대 시트가 흐트러져 있기라도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무 흔적도 없다.

꼭...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서둘러 나머지 2개의 방 문도 열어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입실료는 누가 넣었을까?

지난 번 입실료를 내고 갑자기 나갔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흔적이 없다. 그리고 거의 매일 고시원에 몇 시간을 있었지만

606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난 번 돌려본 CCTV에도 그 방문이 열리는 장면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이 퇴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3명이 동시에? 똑같이 말없이 퇴실하고 똑같이 흔적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 즈음 고시원은 월 100만원 정도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방 값은 한 달에 35만원.

갑자기 105만원의 매출이 사라졌다.

이제 적자는 월 200만원이 되었다.


의심가는 부분은 있지만 결론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이제 이 방들은 공실이다.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이런 일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걸까..

고시원을 접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계기 중 하나였다.

문을 열었던 그 순간의 느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복기]

인수인계 받은 내용은 내가 이 사업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얼마든지 더 나쁜 상황은 발생한다.

설령 입금 내역이 있더라도 의심을 해봐야 한다.



이전 01화 4천만원을 날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