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데리야끼소스 Jan 10. 2022

월셋날이 다가온다

직장인 투잡 실패기 : 실수를 깨닫는 시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고시원 창업으로 4개월 동안 4천만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피눈물 나는 실패 경험이지만,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기 위해 지난 시간을 복기합니다.


매일같이 고시원에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도

손익구조가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입실 문의 자체도 없을뿐더러 기존 입실자들의 퇴실은 이어졌다.

고시원은 드나듦이 빈번하다.

단기 퇴실자를 대비해서 지속적으로 입실을 시켜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들이지 못하니 하루하루 피가 말랐다.


처음 야심차게 시작했던 마음은 조금씩 약해지더니 어느새 와르르 무너졌다.

조금이라도 수입을 늘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매일 밤늦게 귀가하고, 주말에도 고시원 청소를 한다.

일하지 않는 날에도 고시원 핸드폰은 수시로 울린다.

아이들은 주중에도, 주말에도 아빠가 정신나가 있는 모습만을 볼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복기]

새로운 입실자를 채우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기존의 입실자들이

나갈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게 고시원을 넘긴 전 원장은 지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방문해서 최소한의 관리를 하는 정도였다.

매수를 염두에 두고 여러 차례 방문을 해보니 청소나 손 볼 곳들이 제법 보였다.

제대로 된 인터넷 광고 집행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 고시원이


1) 원장이 멀리 살아서 관리가 안되고 있다.

2) 청소를 깨끗이 하고 시설도 몇 군데 고치고, 촌스러운 꽃무늬 벽지와 침대커버만 교체해도 훨씬 좋아 보일 것이다.

3) 게다가 광고 집행까지 열심히 하면 홍보도 잘 될 것이다.

4) 이 물건은 내가 도전하기에 너무 좋은 물건이다!

5) 입실률을 85%까지 올려서 월 500만원을 만들겠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매수에 임했던 것이었다.


고시원을 매수하고

매일 점심과 저녁에 들러 방 하나하나를 바꿔나갔다.

꽃무늬 벽지를 뜯어내고 그레이톤으로 도배를 하고,

복도와 빈 방을 열심히 반복해서 닦고 먼지를 걷어냈다.

고장 난 변기와 수도꼭지를 고치고,

에어컨과 보일러도 수리를 했다.

고시원 어플 곳곳에 각각 수십만원씩 광고를 집행했다.

사진도 다시 찍고, 블로그도 개설하고, 간판도 교체하고...


업무일지를 쓰자면 정말 많이 쓸 수 있을 만큼

언제나 바쁘고 땀 흘리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점점 입실자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수요든 가격이든 마케팅이든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사람을 채우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리고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가 내 노력에 반응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사람이 오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존 입실자들의 퇴실이었다.




내가 놓친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고시원에 계속 새로운 사람을 입실시키지 못하면 사람이 줄어든다.

이미 몇 년을 공실이 넘치던 곳이다.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다.

전 원장이 받던 방 가격은, 옛날 좋았던 시절의 가격이었다.

요즘 그 가격을 주고 고시원 방에 들어올 입실자는 없었다.

더 낮춰야 했다.

그럴수록 손익분기는 멀어졌고,

인근 다른 고시원들과 저가 경쟁이 불가피했다.


전 원장이 지방에 가서 관리가 안 된 것이 아니고,

아무리 해도 장사가 되지 않아서 지방에 내려간 것이었다.

이제야 상황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입지, 가격, 수요, 상품의 특성까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나의 사업성 분석은 이토록 미비하고, 궁색했다.

고시원을 인수하기 전에 나름대로 분석했다고 생각했지만 놓친 것 투성이었다.

사업을 할 준비가 너무나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 계획한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입실 문의 거의 없다.


18명은 채워야 손익분기인 사업장인데

12명까지 입실자가 떨어졌다.


최소한 6명을...

한 달에 100만원이라도 수익을 내려면 10명을 채워야 한다.

그건 50~60명이 방을 보러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하루에 한 명이 올까말까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무너진다.


분명히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실전에 임해보니 내가 한 건 준비가 아니었다. 무조건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도

400만원이 넘는 월세를 건물주에게 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기]

'잘 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사업의 모습을

다른 곳에서라도 연습을 했어야 했다.


월세 날짜는 얼마나 빨리 돌아오던지...
사업하시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606호 고시원 방문을 연 순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