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은 새로운 동력(D-406)
17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며 다섯 군데의 직장을 다녔다.
유통회사와 비영리단체, 기업재단, 지금의 회사까지 본의 아니게 다양한 직장 경험을 하였는데
그중 가장 즐거웠던 곳을 꼽으라면 전 직장이다.
전 직장은 외국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위해서 설립된 재단으로
급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실적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었으며
사업 초기라서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가 많은 점이 좋았다.
하지만 "즐거운" 느낌까지 들었던 이유는
6명의 작은 규모와 마음 맞는 동료들의 존재에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 숫자가 적다 보니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데,
조심스럽고 내향적인 내 성격에는 이런 작은 조직이 어울렸고
다행히 동료들끼리도 서로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일의 내용은 우리가 일을 하는 의미가 되었지만
원활한 관계는 회사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일 회사에 가는 것이 기다려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회사만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꼭 한 명은 있는 빌런의 악행과 사고 처리를 걱정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토록 좋았던 직장에서 나온 이유는 고용의 안정성이었다.
서른여섯,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둘째가 태어나자 생전 처음 해보는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몇 살까지 일해야 할까?"
두 아이를 '사랑받은 티가 나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생활고를 겪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둘째 아이가 성인이 되는 스무 살이 되면
나는 쉰다섯의 중년이 된다.
대학 학비와 독립 지원 등등 자녀에게 들어가는 정성은 끝이 없겠지만
최소한 55세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에게 좋은 직장의 기준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 직장은 현재가 만족스러운 반면에 미래는 불투명했다.
모기업은 재단의 예산을 축소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의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사업비를 삭감하는 등
철수를 시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내부적으로도 업계 특성상 내가 성공적으로 승진을 거듭한다고 해도
윗사람의 자리는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채우는 자리이기도 했다.
내가 당시에 직장을 다니면서 만족했던 그 시기는,
가장 좋았던 시절로 기억될 짧은 찰나가 될 것이었다.
1~2년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너무나 아쉽지만, 결국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새 직장은 내가 다녀본 회사 중에 가장 규모가 컸다.
직원은 300명이 넘었고, 여러 회사가 하나로 합병되면서
서로 다른 업계에서 온 직원들이 함께 어울려 일해야 했다.
작은 조직에서 아기자기하게 일하다 온 나는
다수 속에서 내 존재를 어필하고 친한 사람을 찾아나가는 일에 서툴렀다.
조직구조상 신입사원을 위주로 뽑다 보니 나이 차이가 제법 났고
몇 안 되는 또래들은 특정 회사 출신의 사람들로 그들은 그들의 세계가 있었다.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고용 안정이 되니까,
다시 말하면 나도, 그도 해고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인지
권위적이며 최소한의 비즈니스 매너가 통하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보였다.
의사결정은 술자리에서 이루어지고, 공식적인 정보보다는 뒷소문에 의해 굴러갔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문화가 되어갔다.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몰아주고,
친한 사람에게 보상을 주었다.
일도 보상도 받고 싶지 않았다.
고용안정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고용안정을 얻었지만
회사를 다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시선에 따른 이야기다.
우리 회사를 다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직장일 수도 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 생각이 맞다.
밖에서 우리 회사를 본 누군가에게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과 고용안정 만으로도 좋은 회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생각 역시 맞다.
그리고 당연히 좋은 점도 있다.
그중 가장 큰 장점은 나를 거둬주고 월급을 주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느 회사든 사람 사는 곳이면 비슷한 모습일 수도 있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크기에 그만두지 못하고 다니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맞다.
하지만 적어도
나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나'는
여기에 있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생계라는 의무와
행복하지 않다는 나의 마음의 사이에서 방황한다.
17년간의 직장생활 내내
나는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마음을 바꾸려고 했다.
내 마음을 혼내며
불만을 가지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어디 그 시도가 성공한 적이 있었던가?
고통스러워하다가 버티고 버티다가 이직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동안에는 가지지 못했던 것이 있다.
지금 당장 불만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지금은 있다.
전 직장의 사무국장님께 지금도 참 고마운 마음이 많은데
그분이 내게 가르쳐주신 것이 있다.
일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제도나 회사의 정책이 있을 때
사무국장실의 문을 수시로 두드렸는데
그분은 항상 내가 제기하는 문제점(?)을 수긍하고 받아주셨다.
그리고는 그 해결책을 같이 찾아 보자고 하셨다.
감정적인 불만에서 그치지 않고
대안을 찾는 것이 올바른 태도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셨다.
불만에서 그치면 그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 똑같은 불만이 또 생길 것이다.
이번에는 불만을 대안으로 바꿔보고 싶다.
우리 부부의 목표인 이른 은퇴는 그렇게 만들어보고 있는 대안이다.
새로운 생각으로 조금씩 천천히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고 있다.
처음 해보는 시도라 모든 면에서 서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길을 시작해서 너무 감사하고,
회사가 즐겁지 않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