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예전에는 우리 가족의 수인 4가 좋았는데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1’이 좋아졌다. 외롭다기보다는 우직해 보이는 ‘1’이 좋다. 1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사실 숫자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 2세상에서 숫자로 판가름 되는 경우들을 싫어한다. 이를테면 키 *cm에 몸무게 *kg, *등신의 몸매, 비율 어쩌고 하면서 미의 기준을 가린다든가. 상위 몇 퍼센트의 대학을 나왔다는 것으로 지적 능력을 판단한다든가. 많잖아요. 숫자로 말할 수 있는 인생의 부분들- 하여튼 삼류, 일류 이런 말, 다 별로. 그런데 또 삼류의 4람들은 좋다. 언젠가 열정적으로 꿈이라는 것을 꾸고 그것을 위해 전력 질주할 자신감에 부풀었던 시절. 내 꿈은 세상에서 삼류라 불리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었다. _삼류는 따로 있지만!_ 개인의 삶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았다. 그 똑같은 말들. 어쩐다 저쩐다를 들은 이들에게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위로와 사랑이 되고 싶었다.
사람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5지랖 넓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 말은 싫었다. 오지랖이 아니라 ‘배려나 관심’이라는 표현을 써줬으면 했다. 어쨌든 나의 오지랖은 지금도 넓고 넓은 바다와 우주같아서……
6체적 노동을 좋아한다. 노동뿐만 아니라 운동하는 것, 활동하며 땀 흘리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다고 모든 움직임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부지런하지도 않으며 건강한 사람도 아니다. 뭐든 다 그 나름이니. 활발하고 흥이 넘치는 성격에 털털하기도 하지만 7칠 맞진 않는다. 칠칠치 못한 것들을 싫어한다. 하도 깔끔을 떨어 대서 같이 사는 언니가 나를 참 힘들어했다. 흰옷에 진 얼룩, 바닥에 뭉쳐있는 머리카락, 밥상 위에 떨어진 빨간 양념 같은 것을 보는 게 힘들만치 싫다. 강박증인가? 뭐 그런 게 있는 것도 같다. (약간)
8짝 팔짝 뛰어다니는 개구리와 그의 천적 뱀을 싫어한다. 이것들은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서 증오의 수준이다. 그들이 뭐 잘못한 건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싫어서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심하면 기절했다. 아 왜 하필 나는 뱀띠일까.
9하기 힘든, 보기 어려운, 먹기 아까운- 희소성의 가치가 대단한 것들보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의 것들이 좋다. 사소한 것들이 주는 감동을 좋아한다. 거대한 약속을 이루고자 한 날보다 별 기대 없이 흐르던 날에 만난 인상적인 경험이 훨씬 큰 일기가 된다. 10자가를 맹신하며 성경을 기준으로 오만과 편견을 가지는 사람을 싫어한다. ‘모태신앙’이라는 뿌리 깊은 30여 년의 종교 역사를 버렸을 때 한몫했던 것도 ‘믿는 자들’이라는 무리 때문이었다. 편견을 싫어하는데, 세상에 이것을 만들어내는 큰 주축 중 하나가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폭력적인 시선과 마음을 거두어 좋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