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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11. 2023

CD를 튼다



촬영이 끝난 후 아티스트의 이름과 메시지가 적힌 CD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맙게 받아왔지만, 이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한 일은 없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인 시간이 만든 동그란 CD를 그저 두 손으로, 받을 뿐이었다.

죄송스럽게도 이 글을 빌려 말하자면 대부분의 CD를 열어본 일이 없다. 앨범에 따라 무게도, 이야기도 달랐겠지만, 받은 순간 훑어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방 한쪽에서 차곡차곡 쌓이며 개중에 하나가 되는 것의 반복.




어린 시절엔 꽤 오랜 시간 CD플레이어를 사용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기계들이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어져 나를 유혹했지만, 고집스레 들고 다니며 한 가수의 앨범을 줄줄 외웠다. 후엔 기억을 추억으로 향유하는데 배경음악처럼 노래가 함께 들리기도 했다. 노래엔 나의 이야기가 있었고, 감정이 있었다. 그것으로 매만져지는 향기들이 해마다 생겨났다.

그리고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듣는 것이 쉬워진 만큼, 어딜 가도 들리는 노래들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음악으로 얘기하는 아티스트의 매력을 쉽게 넘겨짚었다. 해마다 탄생하는 수많은 가수를 보면서도 개개인의 노력을, 드디어 꿈의 장을 연 환호의 순간을 함께 기뻐해 주지 못했다. ‘요즘 음악은 유행에 민감해.’ ‘옛날 음악은 그랬었지.’ 하며 쉽게 판단하고 뱉은 나의 말은 어느새 몇 번이고 세상을 빙빙 맴돌고 있을 것이었다. 그 생각이 ‘과해질’ 무렵, 선물로 벽에 걸 수 있는 CD플레이어를 받았다.


한쪽에 쌓인 CD들을 보며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잠겨있는 이야기가 보였다. 읽지 않으니 모르고, 보지 않아 외로운 음악 이야기들이.

먼지를 툭툭 털어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이 준 CD와  메시지를 읽고 들었다. 또다시 먼지를 털어 오래전 그 앨범을 다시 들으며 기분 좋게 추억에 빠졌다. 어떤 것은 너무 많이 들은 탓에 늘어나 버려서 튀는 음이 들리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꺼내 쓰임이 반가웠는지 생-생 돌아가는 기계음마저 활기차게 느껴졌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얘기하고 판단해 버리는 나쁜 습관이, 생활에 켜켜이 자리 잡은 것을 알았다. 전체를 알고 싶다면 전체를 알려고 해야 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CD 한 장을 틀며 다시금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편하게 잘 묵힌 것들과 비교하며 경계했던 나는, 이 소중한 것을 만들어낸 수많은 사람의 수고를 알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어느 시작도 낯선 것은 마찬가지, 그것이 주는 생소한 떨림을 즐기며 나는 익숙해질 예정이다. 언젠가 돌이켜볼 지금을 더 풍요롭게 만들 가사와 멜로디를 새롭게 품을 것이다.

낯선 노래 하나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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