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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14. 2023

집은 집이다

자취만 15년 차가 되다 보니 이제는 이사나 집 정리엔 도가 텄다.

대학교 시절 침대며 책상이 빼곡히 들어선 원룸부터,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했던 오래된 주택, 깔끔한 신축 빌라였지만 해가 들지 않아 어둠만이 짙었던 곳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다양한 집과 동네에서 살았다.




계약 기간 2년을 채워 이사할 때가 되면 귀찮지만, 열심히 집을 알아봤고, 이제는 어느 정도 경력(?)이 채워져 제법 능숙하게 나만의 기술로 집을 본다.

처음에는 낮과 밤이 없는 직업에 워낙 아침잠이 많아, 집 안으로 빛이 들지 않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방은 일 년 내 습했고, 빨래는 건조기 없이 마르지 않았으며 종일 집에 있는 날엔 아침부터 불을 켜고 살았다. 엄마는 내가 없어도, 낮 동안 빛을 머금었던 공간의 차이는 크다고 얘기해왔는데, 괜찮다고 뻑뻑 우기더니 완전히 인정하며 꼬랑지를 내린 셈이다.


그래서 ‘남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느지막이 일어난 낮에도 그 따뜻한 햇볕을 반길 수 있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책장이 빛을 받아 바짝 마르는 냄새, 한 달 내 쓴 수건을 뜨거운 물에 소독해 볕에 말리는 상쾌함. 집안의 빛은 나를 포함한 다양한 것들을 환기하고 변화시켰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앞집과의 거리였다. 요즘은 지나다가 ‘공사하나 보네’ 했던 터가 며칠 뒤에 신축 빌라로 뚝딱 만들어져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그만큼 빠르고 능숙하게 지어대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쉽게’ 들어서 있다. 빼곡하게 자리잡힌 빌딩에선, 문을 열면 남의 집 안방까지도 보여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부지기수.

게다가 뜻하지 않게 들리는 대화 소리부터, 누군가의 기상패턴까지 알 수 있는 아침 알람도 간간이 들린다. 그리고 나는 의도치 않게 상상 속에서 이웃을 파악하고 있는 엉큼한 사람이 된다.


나의 방 창문에서 앞집 창문과의 거리가, 이웃 관계에 비례하지 않으니 조금만 더 넓으면 좋겠건만.. 우리는 물건까지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을 마주하고 있다. 다른 집이 잘 보이는 만큼 내 생활까지 신경 쓰게 되는 삶. 그렇게 이웃을 의식하고 의심하게 되는 집은 바로 제외된다.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 좁고 외진 골목 상가나 밝은 곳으로부터 너무 떨어진 곳도 좋지 않다. 늦은 밤 귀갓길에, 내 뒤로 걷는 누군가의 걸음을 위협적으로 느낀 적도, 집이 외진 곳이라 가는 길 내내 무서웠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것이 여자가 느낄 수 있은 흔한 상황과 감정이라 생겼던 일인지, 정말로 집의 위치 문제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이게 다일 리 없다. 13년 차 자취생이 말할 수 있는 깐깐한 조건은 분명 더 있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집을 구하는 건 참 힘들다. 몇 개를 만족하면 몇 개는 아쉽고, 왠지 어딘가엔 마음에 꼭 드는 집이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엔 뜨뜻미지근한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살다 보면 괜찮겠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정말로 어떤 집은 살아보니 좋았고, 첫인상보다 별로였던 집도 있었다. 전부 살아봤기에 알게 된 것들이다.


집에 대한 나의 조건들은 이 글을 쓰면서 더 명확해졌는데, 생각해보면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집이 주는 안락함이 그것이다. 여행지의 화려한 숙소도, 나의 욕심을 채운 누군가의 집도 모든 걸 다 내려놓게 하는 편안함이란 없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어딘지 불편한 것은 내가 곳곳에 배어있는 집이 아니라는 것. 나를 가장 잘 아는 집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늘 경험한다.



다시, 살아봤기에 아는 것에 대해 쓴다. 공간의 존재 자체에 이러 저러한 조건이란, 뒤 따라오는 양념일 뿐. 그 자리에 있어 주는 내 공간은 어디든 당연하게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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