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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09. 2023

사랑하는 이온아




네가 몇 살 때 이 편지를 읽게 될까. 언젠가 글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천천히 이 글을 읽어나가길 바란다. 이모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쓴 첫 편지를. 


먼저 첫 돌을 축하해. 앙증맞은 네 작은 이 두 개는, 오늘도 조금 더 컸겠지.

천천히 자라느라 아프지? 그래도 우리 이온이, 엄마 배 속에서부터 지금까지, 너의 속도로 예쁘게 잘 자라고 있어 줘서 이모는 고마워. 

세상의 모든 어른이 고통의 과정을 겪으며 이만큼 자랐을 텐데, 어쩐지 크고 배우느라 아팠던 지난날은 점점 멀어지고 있어. 그저 그 시절의 배움과는 다른 무게를 견뎌내며 애써 담담하게 세상을 살아간단다. 

그러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혼자서 터득한 대견함과 기쁨을 기억한다면 참 좋겠는데. 그러면 살면서 무너지는 어떤 날에 그 대단함을 기억하며 작은 힘을 뿌리내릴 수 있을 텐데. 


이모는 이온이가 크면 꼭 말해줄 거야. 네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먹는 법, 기는 법, 걷는 법을 몇 번씩 넘어지면서도 꿋꿋이 해냈다고. 알려주지 않은 것을 알아내는 커다란 성공을 날이 갈수록 몇 개씩 해내며 건강히 자랐다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이야.


이온이가 어떤 모습으로 클지 정말 궁금하구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인데, 크면서 엄마 속 조금만 썩였으면 좋겠다. 이모는 네 엄마를 너만큼 사랑하니까, 우는 날이 많아지면 마음이 많이 아플 거야. 

엄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엄마를 많이 안아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잘 들어주고 안아주는 것만큼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아. 너를 낳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 사람이야. 

크면서 알게 되겠지만 무언가를 포기하는 데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법이거든. 말도 없고 여린 사람이지만 나는 너의 엄마를 보면서 내면이 강한 게 무엇인지, 큰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얼마나 큰 존경심을 가질 일인지 자주 느꼈어. 네가 세상에 나올 때의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마는 3일의 진통을 견뎠단다. 오로지 네가 준비됐을 때까지 고통을 인내했지. 너를 만나기 며칠 전 이모가 호기심에 물었을 때, 엄마는 낳기 전의 고통을 ‘코끼리가 뱃속을 짓밟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세상에 이온아. 그 아픔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아직은 그 동그란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작아 보이겠지. 그렇지만 네 엄마는 본인이 본 것보다 더 큰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더 자신을 희생할 거야. 그렇게라도 네가 아쉬움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살며 만나게 될 슬픔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엄마는 너의 세계를 넓히고 더 넓힐 거야. 그러니 너는 그 세계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면 돼. 엄마뿐 아니라 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너를 응원하고 지지할 거야. 

무뚝뚝해 보이는 네 아빠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네 뒤에 서 있겠지. 이모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아빠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사람이 되렴. 말없이 듬직한 사람이, 많이 표현하는 사람보다 말로 담을 수 없는 깊이를 가진 경우도 많거든. 

아빠가 그럴 거야. 중심이 있는 사람, 그 중심이 무겁고 단단한 사람. 아빠의 눈빛과 손길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되렴. 

우리 이온이의 이름만큼 따뜻한 온기가 사람을 잘 매만지길 기도할게. 


세상엔 많은 일이 일어나니, 네가 겪은 것들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이온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이야기를 환영하고 기대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너만의 방식으로 그 일들을 잘 쓰다듬고 해결하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옳은 입장에 설 수 있길. 옳은 것의 기준은 약한 것이야. 약한 것의 기준은 힘이 없는 것이고. 나는 이온이의 따뜻함이 필요한 곳곳을 잘 품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언젠가 술 한 잔 기울일 날이 오면, 다시 또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 네가 존재함으로 그날을 상상할 수 있음에 다시 감사한 밤이구나.


사랑하는 네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 누구에게보다 가장 긴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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