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Sep 18. 2023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워낙 오래전 일이지만 그날 씌워주신 우산 덕분에 다 젖은 채로 물 뚝뚝 떨어지며 출근하는 불행을 모면한 사람입니다. 갑작스럽게 내린 소나기를 손가락 다섯 개로 이래저래 막아보며 건널목에 서 있었는제게 우산을 씌워 주셨지요.


생각지 못한 친절엔 어쩐지 감사와 감동보다는,

의심이나 당황을 버릇처럼 하게 되는 시대입니다.

함께 걸어가는 동안 별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당시 저는 사회에 막 발을 내디딘 막내였고, 야근과 끝나지 않는 일들로 씨름하며 피로감을 한가득 몰고 다닐 때였거든요. 그날 씌워주신 우산이 제 일상에 우산이 된 것 같았어요. 그 모든 힘듦으로부터 젖는 것을 막아주는.


덕분에 저는 하루를 잘 시작할 수 있었고,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종종 배려를 받을 때,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때면. 그날이 생각납니다.

그때 제대로 말씀을 못 드린 것 같아,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려요.

그 비를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이전 04화 잃기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