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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24. 2023

잃기 전에



어느 순간부터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어떤 것들이 주는 아쉬움 들을 미리부터 쌓아놓는 습관이 그것인데, 따뜻한 커피와 꽃과 인형, 강아지 같은 것들이 그 예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나보다 먼저 사라진다’는 것이었고,  어느 경우엔 사라짐의 결정권이 내게 있기도 했다.


뜨거운 커피는 서서히 식어가는 것이 좋지 않아 차가운 음료만을 고집했었고,

시드는 꽃을 보는 게 싫어서 오랜 시간 꽃 선물을 싫어했다. '아름다움' 그 자체인 꽃의 향기와 싱그러움. 그리고 그 절정에서 모든 걸 잃어가는 '시듦'의 결말.  결코 길지 않은 그 시간을 지켜보는 과정이 어쩐지 서글픈 일이었다.  

쓰레기장에 비 맞으며 버려진 인형을 볼 땐, 언젠가는 뽀송한 모습으로 듬뿍 사랑받았을 시절이 너무도 쓸쓸하고 안타까워 누군가에게 선뜻 선물하지 못하는 물건이 돼버렸고.


이런 식의 고민은 비슷한 물건을 가지게 되거나 상황에 놓이면, 끊임없이 연상작용을 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이런 괴롭힘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그 ‘어느 순간’을 찾아보았다.






이사를 많이 다닌 어린 시절의 사정으로 나에겐 오랜 친구가 몇 없다.

몇 해에 걸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 시절 나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해야 하는 ‘생존 능력’이 길러졌다. 어린 내게, 세상은 너무 많은 것들과 만남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것들에 잘 물들었지만 오래된 것들은 잘 잊어갔다. ‘언제 어디서든 당연히 있겠거니’ 싶었던 사람. 긴 시간이 만들어 준 관계에 안주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평범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쳐 버리듯, 나 또한 어떤 허무한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 친구를 잃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자신만을 챙겼던 이기적인 욕심이, 새로운 물에서 잘 놀기 위한 생존을 핑계 삼아 삐딱하게 자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죽음을 위로할 자격조차 없다는 기분, 마지막 관계를 돌이키며 수없이 반복되는 후회와 절망. 장례식장을 가며 검은색 옷을 고르는 내가 싫었다. 그가 세상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 같은 첫 행동이었기에.


아직도 어디에선가 잘 살아 있다고 믿는 막연한 위로와 무의미한 상상이 시간을 흐르게 한다.

친구의 죽음과 안녕을 제대로 인정하고 다독이지 못한 채 ‘떠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만들었다. 따뜻한 커피, 싱싱한 꽃, 보드라운 인형, 맘껏 안아주고 싶은 강아지. 있는 그대로를 누리지 못하고 앞날의 헤어짐을 미리 그리며.





시드는 것, 사라지는 것, 버려야 하는 것, 죽는 것.

이 모든 것들에 분명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을 제대로 향유하고 취할 수 있는 것이 인정하고 잘 보내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며 다시 새긴다.


이제 여기서 마침표를 찍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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