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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04. 2023

발목이 아작나도 술은 마실 것





알코올 인생 십여 년 차.! 가 되다 보니 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주량이 세졌고, 술을 마셔도 취한 티가 나지 않는다. 주사도 별로 없으며 다음 날 해장도 필요 없다. 쉽게 말해 알코올과 함께 살아가기에 타고난 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부터. 

문제의 그날, 우연히 만들어진 특이한 조합에 신이 난 우리는 3차까지 가서 소주 n 병을 먹고 있었다. 화장실은 2층에 있었고, 그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지고 만 것이다. 발목이 니은자로 꺾이며 예상치 못한 ‘똑’소리가 났다. 불행한 기운이 아픔과 함께 찌릿하게 흘렀고, 나는 병원에서 인대 파열에 깁스 6주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마시다가 그리될 줄 알았다’ 든가 ‘그니까 적당히 좀 마셔’ 같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잔소리가 뻔해 ‘술을 마신 상태’였다는 건 다친 사정을 얘기한 후에 말했는데도, 결국 그 뻔한 소리를 몇 차례 듣고 말았다. 그들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나의 입장은 명확하다. 

정신은 말짱했기에, 술이 아니어도 넘어졌을 거라는 확신. (정말 그렇다. ‘넘어질 팔자였겠지’라고)  


돌이켜보면 ‘술이 원수’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과 경험도 내겐 있다. 

취하면 흩어지고 흐려지는 감정선을 넘나들며 누군가를 괴롭게도 외롭게도 만들었던 것 같다. 못난 과거에서 다시 못나지는 미래를 반복하며 어느 시절의 기억은 찌질이의 형태로 존재한다. 

알코올의 힘으로 대담해졌던 고백의 기억, 나도 모르게 쌓인 감정이 올라와 마음 바닥에 찐득하게 눌러앉은 것들까지 녹이던 오열의 순간, 부는 바람만큼 외로워 멀쩡히 (?) 걸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걸어 본 거리…. 쓰다 보니 추억에 적셔진 나를 발견할 만큼 술의 기억은 미웠다가 안쓰러웠다가 한 대 때려주고 싶다가 민망하기도 한 나 자신으로 거기에 존재한다. 

술을 즐기고, 적당히 마실 수 있게 되기까지의 나를 만들어준 안주들과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글을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특별히 사람들. 내 삶의 이야기가, 나의 내가 될 수 있게 해 준 사람들.  


발목이 아작나는 불편한 경험을 하면서도 술은 마실 것이라는 굳은 마음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술의 대화는 한 방향으로 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만 생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자리에 있던 각각의 사람들과 함께 쌓였고, 내가 지금의 나일 수 있게 해 준 만큼 나도 누군가를 현재의 그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술의 힘을 빌려’ 만들어지는 자리에는 취기의 분위기가 함께 돌고, 그 기운은 늘 새롭다. 

강요된 술과 만남, 적당할 줄 모르는 주사, 내일이 없는 무례함들이 알코올을 즐기는 사람들의 순수함을 헤치지 않기를 바라는 바다. 

엄마는 ‘꼭 술을 마셔야 얘기를 할 수 있니?’라고 자주 묻는다.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 

술을 마셔야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얘기들은 있다. 그렇기에 어느샌가 풀린 눈으로 주절주절 늘어놓는 매력의 시간을, 상대를 치우침 없이 대할 수 있게 되는 자유의 시간을, 빠르게 흘러가 어느덧 새벽이 되고야 마는 취함의 시간을 나는 놓을 수 없다. 


그렇다. 어쩌면 ‘취해서 넘어질 팔자’였나 보다. 그리고 술은 세지 않고 취한 티가 팍팍 나나보다.


그래도? 마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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