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by 해나엘

10월 10일에 썼던 글을 뒤늦게 발행한다.


지난 1월과 4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각자의 말을 남기고 그것을 연말까지 지켜내는 것! 연초답게 1월에 남긴 나의 말은 "쓰는 사람: 너의 이름으로 작품을 완성했니?" 였고, 4월의 다짐은 "균형찾기"였다. 10월 10일인 오늘 나는 두 가지 다 지키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혼자 허허 웃었다. 물론 아직 올해는 3달이나 남았다!


4월에 다짐했던 균형찾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오히려 더 기울어졌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4월부터 시작된 임신준비는 나를 기울어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온 신경이 임신준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 달은 되지 않을까?' '이번 달은 몸 상태가 좀 다른 거 같아'하며 기대와 실망을 오고 갔던 6개월이었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하면, 누군가는 위로를 해줬다. 고마웠다. 하지만 사실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6개월동안 나는 스스로를 절망 속에 잠식시켰다. '남들은 잘만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남과 비교하며. '혹시 내가 뭔가 잘못을 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에 띄었지만 그닥 보고 싶지 않았던 세바시 강연을 대표님이 회의자리에서 말씀하며 친절히 톡으로 보내주셨다. 김새섬 그믐 대표의 <뇌종양 판정받고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뭘 하시겠습니까?>

https://youtu.be/lZGr_NisTz0

투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체 걱정이 많은 나는, 투병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그 병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오는 퇴근길 차 안, 라디오처럼 틀어둔 김새섬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엉엉 울었다.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측은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위안을 얻었다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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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나가간다. 중요한 건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아질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시련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그동안 나의 태도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교하고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과 나를. 그들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지를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절망의 파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의 짐을 짊어져야 할 때. 어떻게 짊어질 지는 나의 결정에 달려 있다. 계속 이렇게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살아갈지, 조금씩 균형을 찾아 진흙탕을 벗어날지. 4월에 다짐했던 '균형'을 다시 찾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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