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에 썼던 글을 뒤늦게 발행한다.
지난 1월과 4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각자의 말을 남기고 그것을 연말까지 지켜내는 것! 연초답게 1월에 남긴 나의 말은 "쓰는 사람: 너의 이름으로 작품을 완성했니?" 였고, 4월의 다짐은 "균형찾기"였다. 10월 10일인 오늘 나는 두 가지 다 지키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혼자 허허 웃었다. 물론 아직 올해는 3달이나 남았다!
4월에 다짐했던 균형찾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오히려 더 기울어졌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4월부터 시작된 임신준비는 나를 기울어진 사람으로 만들었다. 온 신경이 임신준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 달은 되지 않을까?' '이번 달은 몸 상태가 좀 다른 거 같아'하며 기대와 실망을 오고 갔던 6개월이었다.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하면, 누군가는 위로를 해줬다. 고마웠다. 하지만 사실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6개월동안 나는 스스로를 절망 속에 잠식시켰다. '남들은 잘만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남과 비교하며. '혹시 내가 뭔가 잘못을 한 건 아닐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에 띄었지만 그닥 보고 싶지 않았던 세바시 강연을 대표님이 회의자리에서 말씀하며 친절히 톡으로 보내주셨다. 김새섬 그믐 대표의 <뇌종양 판정받고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뭘 하시겠습니까?>
투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체 걱정이 많은 나는, 투병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그 병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오는 퇴근길 차 안, 라디오처럼 틀어둔 김새섬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엉엉 울었다.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측은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위안을 얻었다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시련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앞으로 나가간다. 중요한 건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아질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시련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그동안 나의 태도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교하고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과 나를. 그들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는지를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절망의 파도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나의 짐을 짊어져야 할 때. 어떻게 짊어질 지는 나의 결정에 달려 있다. 계속 이렇게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살아갈지, 조금씩 균형을 찾아 진흙탕을 벗어날지. 4월에 다짐했던 '균형'을 다시 찾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