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박사과정 도전기 #3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매주 목요일 하루만 학교에 가는 일정으로 수업을 짰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10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학교 수업을 모두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목요일마다 아이들의 돌봄 공백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목요일에 남편이 반차를 쓰거나, 친정엄마가 지방에서 올라오시거나, 시부모님이 하루 일을 쉬시고 아이들을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한 달에 한번 정도씩 나를 위해 하루의 시간을 내어주시기로 했는데, 그렇게 몇 주 해보니, 이건 아닌다 싶었다. 내가 뭐라고,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그런 상황이었다. 결국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돌봄 이모님을 구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건 상상해보지 못했어서 두려운 마음에 가족들에게 먼저 손을 빌렸던 것인데, 이제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원래 알고 지내던 근처에 사시는 좋은 어르신께서 아이들을 돌보아주시기로 하셨다. 매주 목요일만 4시부터 7시까지 일주일에 3시간만 봐주시도록 부탁드렸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7시였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잘 적응했고, 주변에서 우리 아이들을 알아보는 다른 엄마들이 놀이터에서 본 돌봄 이모님이 아이들을 너무 잘 봐주신다고 전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은 놓을 수 있었다.
학교 가는 첫날은 너무 신나고 설렜다. 아이들을 두고 온전히 자유롭게,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독립적일 수 있는 그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나의 발걸음은 가볍게 했다. 학교에 가서 석사 동기들과 밥도 먹고 수다도 떨었다. 그들은 이미 박사가 되기도 하고, 박사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기도 했다. 이제 겨우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많이 뒤처진 것은 아닐까 하는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디인가! 박사 과정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그 자체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오랜만에 듣는 수업은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힘들었다. 내 역량의 부족함을 매 수업시간마다 여실히 깨닫고 또 깨달았다. 3년간 동화책 외에는 다른 책도 연구물도 읽지 않은 채 학업과는 담을 쌓아온 나에게 각종 통계와 영어로 된 연구물들을 읽어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건 좋았지만, 과제와 발제를 해내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하며 매주 수업을 따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아이들 등원 준비와 함께 나도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은 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는데, 아이들은 그건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서로 장난치고 오늘 무슨 공주옷을 입을지 고르기에만 바빴다. 나는 끝없이 아이들을 제촉하고 또 제촉해야만 했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마다 정신없는 아침시간을 보내고 기차에 올라탔다. 그래도 그나마 이런 아침을 겪어내는 건 아주 다행이었다.
어느 학교 가는 날 아침, 첫째 둘째 아이가 너무 많이 아팠다. 남편도 출근을 미루고 함께 병원 문 열리기도 전에 병원 앞에서 대기 탔다. 진료를 받으니, 폐렴 초기와 장염이 함께 왔고 수액 맞고 경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어린이집은 갈 수 없었고, 당장 1시간 이상 맞아야 하는 링거가 아이 손에 연결되었다. 기차 시간은 겨우 30분 남아있던 상황이었다. 돌 전에 맞곤 처음 맞는 큰 주삿바늘에 잔뜩 겁먹은 아이는 바늘을 꽂고 있는 내내 병원이 떠나가라 울었다. 나는 하필 그날 발제라 학교에 꼭 가야 했고, 남편도 출근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어서, 급히 시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병원 떠나가라 울며 링거 맞고 있는 아이를 병원에 남겨두고 난 학교로 향했다. 역사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내가 학교를 다니는 게 맞나, 학업을 이어가는 것이 맞는가 하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머리도 발걸음도 마음도 모두 너무 무거워서 다 내려놓고 싶은 그런 하루였다. 이런 상황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면 다행일 텐데, 앞으로 종종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서던 날이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엄마로서 일주일에 한 번 학교 가는 것도 이렇게 고비가 있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데, 워킹맘들은 어떻게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는지..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 하나만 제대로 해내는 것 조차 내게는 벅찼었는데, 박사과정을 시작했다니,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일단 시작했으니, 킵 고잉(keep going)이다. 어려울 것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진짜 만만치 않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시작이 도전 그 자체인 이 일을 나는 해보려고 한다. 우선 첫 학기만이라도 무사히 마치자. 중간에 휴학을 하든, 졸업이 아닌 수료로만 마무리를 하든 우선은 하는 데까지는 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보는 거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보자.
세줄 요약.
1. 학교 가는 것은 신나고 즐겁다.
2. 그러나 두 아이를 두고 학교를 가는 일에는 변수가 많다.
3. 학교 다닐 만한 여건과 환경인지 내 역량은 그에 맞는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