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매일 사랑해 말하기

말랑말랑한 우리가족 만들기, 남편과의 관계회복 프로젝트 #1

by 김나나

곧 결혼 10주년을 맞는다.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다. 초반에는 매일이 설렘이었는데, 이제는 전혀 그런 설렘은 찾아보기 힘든, 우리 부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화 **<호프 스프링즈(Hope Springs)>**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30년을 함께한 부부가 어느 날 더 이상 대화도, 스킨십도 없는 상태에 이른다. 아내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남편을 설득해 부부 상담을 받으러 떠난다. 상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기도 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 과정은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눈물겹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산물인데, 이게 굳고 딱딱해지면 다시 말랑하게 만드는 데 정말 큰 에너지가 드는구나. 저건 노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내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다. 회사에서는 책임감 있게 일하고, 양가 부모님께 잘하며, 아이들과도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사회에서 받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짜증으로 풀 때가 종종 있었다. 점점 말투가 삐딱해지고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반대로 집을 최대한 유쾌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는 늘 웃음을 더하려 했고, 남편과도 그런 관계를 원했다. 하지만 내가 “연애할 때처럼 설레고 싶다”라고 말할 때마다, 남편은 그 욕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남편도 다정할 때가 있다. 문제는 그 다정함이 대부분 잠자리를 원할 때라는 점이었다. 다정함이 하나의 ‘전초전’처럼 느껴지니, 진심보다는 목적을 위한 도구 같아 서운했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장난 반, 스킨십 반으로 다가올 때면 웃으며 넘기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했다. 심지어 “이러다가는 언젠가 정말 큰소리로 제지하겠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대화는 점점 단조로워졌고, 욕구는 엇갈렸다. 우리는 섹스리스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사랑의 마음에서 응한 건 아니었다. 그냥 맞춰주려는 노력일 뿐이었다.



<호프 스프링즈> 이후 다시 남편을 바라보니, 분명 사랑은 있었다. 다만 그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내가 집을 비우면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해두고, 불러내면 말없이 데리러 와주고, 내 일정을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남편이 보여주는 사랑이었다.

문제는,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충족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행동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직접 물었다.
“여보, 설거지 해놓은 거, 그게 ‘사랑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돼?”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럼 말도 해줘. 그래야 내가 확실히 알지.”

그리고 나는 작은 숙제를 내주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사랑해’라고 말하기. 아이들에게도, 나한테도.”

남편은 “무슨 숙제가 다 있냐”며 투덜거렸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퇴근 후 아이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했다. 남편은 원래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 시키면 괜히 반대로 하고 싶어 하지만, 이건 본인도 합리적이라고 느낀 건지 결국 따라왔다.



신기하게도, 그 작은 변화가 우리 관계를 말랑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문자로나마, 억지로나마, “사랑해”라는 말이 오가자 나의 정서적 욕구가 조금씩 채워졌다. 그러자 남편의 요구도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내가 먼저 옆으로 다가가 안겼다. 사실은 그냥 포근히 기대고 싶어서였는데, 남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반갑게 받아들였다. 나조차 놀란 변화였다.



돌아보면, 우리 사이를 바꾼 건 대단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바로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였다.
물론 남편이 이 숙제를 언제까지 성실히 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계속 내주면 된다.

결혼 생활은 결국 작은 습관의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사랑해”라는 말을 하루에 한 번씩 주고받는 것, 그 사소한 습관이 굳어져버린 관계를 다시 말랑하게 만드는 첫걸음일 수 있다.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돌보지 않으면 오히려 굳어버린다. 다행히도 아직 우리는 30년 차가 아니라 10년 차. 지금이야말로 다시 부드럽게 풀어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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