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과의 관계, 왜 이토록 어려운가

엄마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고 싶진 않지만 너무 깊게 어울리기도 싫어..

by 김나나

엄마들과의 관계, 왜 이토록 어려운가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있다. 바로 아이의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매개로 맺어지는 ‘엄마들과의 관계’다. 첫 돌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 인연들은 오래 알게 되고, 친분을 쌓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관계는 유독 쉽지 않다. 회사나 연구실, 혹은 가족 내에서조차 이렇게 힘들게 느껴본 적이 없는데, 엄마들과의 관계만큼은 늘 마음속에서 커다란 숙제처럼 남는다.


말 놓기의 경계, 친밀함과 불편함 사이

나는 상대가 나이 많든 적든 말을 잘 놓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엄마들 사이에는 이 문화가 제각각이다. 나이를 묻자마자 말을 놓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십 년이 지나도 존대를 유지하는 엄마도 있다. 사실 상대가 나에게 말을 놓는 것 자체가 불편한 건 아니다. 문제는 그 말투 안에 미묘하게 깔린 뉘앙스다. 하대하거나, 동생 취급하듯 말하는 순간, 관계의 균열은 이미 시작된다. 특정한 조직의 질서 속에 속하지 않는 관계들이라서 그런지 이런 부분부터 너무 뒤죽박죽이다.


주고받기의 무게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엄마가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나보다 여섯 살쯤 많다. 그는 늘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화장품, 아이 선물, 머리핀, 먹을거리 등을 챙겨주는 걸 즐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안 주고 안 받자’는 주의지만, 상대가 일방적으로 주니 빈손일 수 없어 늘 맞추려 애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 모른다. 선물은 호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관계 안에서 일종의 의무감으로 변한다.


무심한 피드백이 남기는 여운

B라는 엄마와는 7년째 알고 지내며 비교적 가까운 사이로 지낸다. 아이들을 자주 함께 놀게 하고, 나 역시 B의 아이를 데리고 체험학습이나 외출을 도운 적이 많다. 어느 날, 내가 하루 종일 B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사진까지 공유했는데, 돌아온 답장은 단 네 글자. “고마워요.”
물론 원래 그 사람이 그런 성격이라 넘기려 하지만, 정성을 쏟은 시간과 마음에 비해 돌아온 반응이 너무 무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관계의 균형을 흔든다.


얽히고설킨 관계망의 무게

엄마들 사이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친목을 넘어선다. 아이들끼리의 관계가 얽혀 있고, 엄마들 각각의 성향도 천차만별이다. 여기에다 나이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까지 뒤섞이면서, 관계는 더 복잡하고 미묘해진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차라리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소외감이라는 또 다른 그림자

그렇다고 아예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나 혼자 빠져 있으면, 금세 밀려오는 건 묘한 소외감이다. 아이의 사회적 관계가 곧 내 관계로 이어지다 보니, 나의 선택이 곧 아이의 관계망에도 영향을 미칠까 괜히 신경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모임에 나가고, 가볍게라도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그 경계에서 늘 갈팡질팡하며 균형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

아마 ‘엄마들의 관계’에는 아이를 매개로 한 보이지 않는 비교와, 서로 다른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어쩌면 단순히 아이를 키우며 누구나 겪게 되는 당연한 과정일 수도 있고, 나 역시 지나가야 하는 성장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이 역시 내 삶의 일부로서 감당하고 배워가야 하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도 부탁도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