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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소나무 Nov 29. 2022

숲은 도토리 하나에서 시작한다

(19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지난주는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었다. 미국인 친구 말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가을은 끝이 나고 겨울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추수감사절 연휴 직전부터 도로에는 크리스마스 느낌의 전구와 장식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가을의 끝임과 동시에 겨울이 시작되는 경계에 있는 명절인 셈이다. 

도토리. 툭. 출처: pixabay

요즘 길을 가다 보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메마른 단풍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며 천천히 운전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 쪽에서 들린 듯했다. 나는 누가 천장 위로 커다란 돌이라도 던진 것인가 싶어 놀란 마음에 속도를 줄이고 차를 정차한 뒤 살펴보았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차 또한 멀쩡했다. 이러한 일은 몇 번씩 반복됐고 그제야 나는 ‘쿵’ 소리를 내는 범인이 바로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도토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콩알만 한 작은 도토리지만 차에 떨어지니 커다란 돌덩이 같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그래서인지 요즘 공원에 가면 안 그래도 평상시에 항상 보이던 청설모들이 두 배쯤은 더 많이 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잔디 위에 떨어진 도토리를 열심히 이빨로 깨물며 들고 있는 모습이 참 귀엽다. 청설모가 들고 있는 도토리를 보고 있자니 할머니가 해주시던 도토리 묵이 생각났다. 이곳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도토리를 보면 할머니는 분명 말씀하셨을 테니까 말이다. “저 도토리 주어다가 묵 쑤어 먹으면 참 맛있겠다”라고 말이다.  




할머니는 명절상이든, 생일상이든 정성이 들어가는 식탁엔 항상 도토리 묵을 쑤어 올리곤 하셨다. 땅콩버터 같은 색깔의 묵가루가 어떻게 탱글탱글한 식감의 도토리 묵이 되는지 참 신기했지만 어릴 땐 그저 젓가락질하기 바빴던 것 같다. 젓가락질을 잘못해 간장에 묵이 푹 잠기는 순간, 그 도토리 묵을 다시 건져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토리 묵은 아빠와 삼촌들의 든든한 술안주이기도 했다. 친척들이 다 같이 모일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주와 막걸리 안주에 이만한 안주도 없었을 것이다. 숙모가 술상을 내어오면 나는 술잔을 들고 있는 아빠 옆에 찰싹 달라붙어 묵을 달라고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곤 했다. 그러면 접시에 담긴 도토리 묵은 아빠와 삼촌들이 마시고 있는 술병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내가 어릴 땐 친척들이 다 같이 모이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들은 이야기 꽃을 피우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흡족히 바라보시며 안주가 떨어질 때 즘엔 새로운 안주상을 내어 오셨다. 어른들이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우리들은 밤늦게까지 우리만의 세상을 즐겼다. 술이 알싸하게 취한 이모부를 꾀어내 피자를 얻어내거나 삼촌을 졸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가끔은 어른들과 함께 노래방으로 향한 뒤 우리들 만의 방을 얻어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놀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가족들이 점점 나이를 먹어 갈수록 예전의 그 화목한 분위기는 점차 와해돼 갔던 것 같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주말이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술잔을 나누는 일은 각박해지는 현실 탓에 점점 줄어들었던 것 같다. 어릴 땐 함께 매일 함께 뛰어놀던 사촌들도 머리가 크면서 사이는 점점 더 서먹해져 갔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찾아온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서로의 취향은 달라졌고 이제는 명절에만 보는 사이, 생일 때에만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로 바뀌어 갔다. 어른들 사이 역시 예전과는 달라져만 갔다. 작은 일에도 함께 기뻐했던 그 시절과는 달리 작은 일에도 자꾸만 언성을 높이고 서로를 향한 배려와 양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집안의 어른이 사라지고 나니 우리 가족을 감싸고 있던 울타리가 사라지고 오직 ‘내 식구’만이 남게 된 것 같다. 어릴 때 내가 알고 있던 큰 범주의 가족은 이제 작게 쪼개져 ‘삼촌네 식구’, ‘이모네 식구’, ‘우리 식구’로 나뉘어 갔다. 


이런 현실을 가장 안타까워하는 건 우리 엄마이다. 누구보다 가족 간의 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 가족을 더 단단하게 결속되길 바라 왔다. 하지만 현실은 엄마의 이상과는 달랐고 이제는 엄마도 이 사실을 점점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옆에서 보고 있는 딸의 마음은 짠하지만, 나 역시도 2억만 리 바다 건너 먼 미국에서 나만의 새로운 ‘식구’를 만들어 가고 있으니 엄마의 옆구리를 시리게 하는 건 매한가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미국행을 택한 것이 나의 부모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나 싶다.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기적인 딸을 둔 가엾은 우리 엄마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요즘 부쩍 엄마는 “친구들이 자기 딸들과 무엇을 했다더라”하는 부러움이 섞인 푸념을 자주 하시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꼼짝없이 죄인이 되곤 한다. 할머니가 그랬듯이, 엄마도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낙이라고 여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는 놀랍도록 빠르게 이곳에 적응하고 있다. 결혼한 지 이제 1년 반 밖에 안됐지만, 30년 간 남이었던 남편과도 점점 더 한마음 한 뜻을 가진 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미래를 설계하며 단 꿈에 젖어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우리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미래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리곤 한다. 미국에 남을 것인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많은 것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가족이란 참 다양한 크기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 크기는 생각의 차이만큼 커지기도 했다가 작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요즘 나에겐 챙겨야 할 새로운 가족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나의 숲이 다른 숲과 합쳐지며 숲이 확장하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맨 처음 나의 숲이 만들어지던 그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그 중심에 있는 할머니와 엄마가 더 애틋해지는 건 그때 그 시절의 따뜻함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엄마가 요즘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말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 옆에서, 가까이에서 나의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걸 보여주지 못하는 게 미안한 요즘이다. 

새로운 나의 숲은 어떤 모습일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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