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작년 4월, 따뜻했던 봄날. 나는 카밀라와 유에유에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찰스턴(Charleston)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여행이었다. 이날만큼은 햇빛이 가득한 날이길 바래서 우리는 일기예보를 보고 또 보며 우리의 여행 날짜를 골랐다. 운전에 서툰 우리를 대신해 카밀라의 남편, 알레한드로가 동행했다. 사실은 운전이 서툴단 건 핑계고, 운전대로부터 자유로워져 마음껏 취하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찰스턴의 폴리필드비치(Folly field beach). 날이 좋아서 그런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근처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타코와 브리또 등을 주문해 들고는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서 바로 피크닉을 즐길 예정이었기에 우리는 출발할 때부터 이미 수영복을 안에 입고 간 상태였다. 이미 일찍부터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피크닉 매트를 펼쳤다. 주변에는 비치체어와 파라솔, 그리고 성능 좋은 스피커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바닷가의 분위기는 한층 더 힙해져 갔다.
이제 막 이곳의 분위기에 동화되려고 할 때, 유에유에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나에게 같이 갈 것을 부탁했다. 약간은 귀찮았지만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몸을 일으켜 그녀와 함께 다시 우리가 점심을 샀던 레스토랑으로 향했고 볼일을 마친 후 다시 바닷가에 돌아갔을 땐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나의 생일을 위해 친구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이었다. 사실 내 생일은 5월 초였지만, 특별한 장소에서 미리 생일파티를 해주고 싶었다는 친구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진심으로 놀랐고 잊지 못할 생일파티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 중에서 가장 특별했던 것은 역시나 우리의 사진이 담긴 액자였다. 우리 셋의 우정이 시작되던 그날 밤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
우리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던 날은 바로 '그날'이었다. 유에유에와 나 그리고 카밀라가 함께 'Girls night'을 가졌던 그 밤. 우리는 처음으로 밤외출을 나섰고 다운타운 근처에 있던 브루어리(brewery)로 향했다. 진탕 맥주를 마실 작정으로 남편들에게 픽업을 부탁했고 오랜만에 한껏 멋을 낸 우린 우리만의 파티를 시작했다. 맥주를 한, 두 잔 마시며 진지한 이야기부터 실없는 농담까지 폭풍수다를 이어갔다. 라이브 밴드 음악에 리듬을 맞추며 흥이 떨어질 때쯤엔 샷을 한찬 추가해 텐션을 유지하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이날밤 우리가 느낀 건 자유였다.
결혼 후 남편의 공부를 위해 이곳에 오게 된 우리였다. 결혼이란 큰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나라, 도시, 언어까지 모든 상황은 우리가 본인 자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했다. 이곳에서 일도, 공부도 할 수 없는 비자로 생활하며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커리어를 잃었고 자존감을 잃어갔다. 마치 다시 유치원생이 된 것처럼, 남편에게 의존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고국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밤외출도 이곳에선 두려웠고 언어라는 장벽은 항상 어디를 가든 우리를 주눅 들게 했다. 항상 학교생활로 바쁜 남편들은 우리를 감정적으로 케어해 줄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우린 우리가 싱글일 때 느꼈던 이 해방감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이날밤 우리 셋은 모두 같은 감정을 느꼈고 이 감정은 우리를 묶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까지도 서로 공유했고 이 유대감은 우정 그 이상의 전우애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바다를 배경으로 우리 셋은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이 여행의 목적이 우리의 행복한 이 시간들을 추억하고 기록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햇빛을 극도로 싫어하는 유에유에는 해로부터 온몸을 가리고 피부가 타지 않게 노력했다. 반면 바비인형 같은 몸매를 가진 카밀라는 TPO에 맞게 비키니만 입은 채 해를 만끽하며 바다로 향했다. 그런 그 둘을 바라보며 서로 성격도, 취향도 너무 다른 우리 셋이 어떻게 이렇게 친구가 되었을까 생각하며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바다의 풍경이 싫증 날 때쯤, 우리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루프탑 바로 향했다. 맥주를 마시며 기분 좋은 날씨를 느끼며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에유에는 평소에도 엉뚱한 질문들을 종종 하곤 했는데 그 질문은 우리를 항상 웃게 만들었다. 이날 역시 우린 그녀 덕분에 많이 웃었다. 남편과 함께 있는 탓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카밀라가 보낸 윙크사인을 받으며 우린 웃고 또 웃었다.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 찰스턴의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었다. 나는 남편과 종종 이곳을 방문했었지만 밤에 걸어본 적은 없었다. 밤에 거리를 걷는 건 위험하다는 남편의 철학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날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찰스턴의 밤거리를 걸으며 그 곳의 새로운 모습들을 만끽했다. 찰스턴의 다운타운에는 갤러리가 유독 많았는데 문을 닫은 상점 앞에 조명을 받으며 걸려있는 그림들을 보며 걷자니, 이 거리가 우리만을 위한 미술관처럼 느껴졌다.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는 레스토랑이 이렇게 많았는지 전에는 미처 몰랐다. 다른 상점들이 문을 닫고 거리가 조용해지니 분위기 있는 고급 레스토랑만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파인다이닝을 즐기고 있었다.
찰스턴에서 내가 좋아하는 거리 중 하나인 하얀색 첨탑이 매력적인 성마이클 교회(St. Michael's Church)가 있는 거리 역시 밤에 보니 새로웠다. 하얀색 첨탑 뒤로 보이는 반짝이는 별들이 이 거리를 한층 더 로맨틱하게 만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린 광란의 밤을 보내고 싶었으나 마음과 달리 지쳐버린 몸 때문에 서둘러 침대에 누워야 했다. 나는 유에유에와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불을 끄고 누워 시작된 정담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떠들고 난 후에야 우리는 잠에 들 수 있었는데, 우리의 뇌에서 '더 이상 너의 생각을 영어로 전환할 수 없으니 그만 좀 전원을 끄라'라고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대화하며 다시없을 이 밤을 지새웠다.
우연의 우연
다음날도 우리는 숙소를 떠나기 전, 모닝커피 대신 모닝 미모사(Mimosa)를 만들어 먹으며 우리의 텐션을 높였다. 해장술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는 곧장 찰스턴의 다운타운으로 다시 향했다. 이제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떠나면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를 풍경이기에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우리는 찰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레인보우 로우(Rainbow Row)와 히스토릭 디스트릭트(Historic District)를 걸으며 찰스턴을 느꼈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바닷가 풍경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남부지방의 대표음식인 새우 그릿츠(Shrimp Grits)를 먹었다. 이 역시 나에게는 찰스턴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찰스턴에는 골목마다 역사 가득한 집들을 구경하는 맛도 있었고 갤러리, 카페, 구경하고 싶은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도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찰스턴대학교(College of Charleston)는 고즈넉했다. 주말이라 학생들도 없었고 역사가 오래돼 보이는 건물 앞 나무들이 만든 그늘은 평화로웠다. 이곳에서 우린 잠시 쉬어갔다.
이내 우리는 차가 주차돼 있는 곳까지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주차한 곳까지 가려면 30분은 걸어가야 했다. 굳이 구글 지도를 켜서 위치를 확인하며 걷진 않았다. 걸으며 만난 담장 위의 만개한 장미를 보며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걸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우연히 한 성당을 발견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카밀라는 가톨릭 신자였고 나 역시 지금은 냉담자이긴 하지만 가톨릭이었다. 유에유에는 종교는 없었지만 아름다운 성당의 자태에 이끌린 듯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성당은 너무 아릅다웠다. 하얀색 벽들 때문에 더 대조되어 보이는 스테인글라스, 그리고 그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까지.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신성함에 우린 즉각 앉아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 다른 친구들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도했다. 우리의 이 우정이 서로 멀리 떨어진다고 해도 변함없기를.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오늘 우리가 느낀 이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기를.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에 대한 감사를.
주차된 차에 다다를 때쯤, 우리의 운전자 알레한드로는 약간의 피로감을 호소했다. 우리가 사는 컬럼비아(Columbia)까지 가려면 2시간은 운전해 가야 했기에 우리는 근처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카밀라는 차에서 피크닉 매트를 꺼내 하이 배터리 파크(High Battery Park)로 향했다. 카밀라의 무릎을 베고 알레한드로는 낮잠을 청했고 우린 음악을 들으며 각자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카밀라와 알레한드로를 보니 무슨 영화 속 한 장면 같아 보였다. 늘 그랬듯, 언제보아도 참 로맨틱한 커플이었다.
공원에는 아장아장 뛰어다니는 아이와 사진기를 들고 그 아이의 몸짓을 담고 있는 부부도 보였다. 한껏 차려입고 머리에 화관까지 쓰고 있는 걸 보니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공원에 나온 모양이었다. 엄마의 배를 보니 이 아이에겐 곧 동생이 생길 모양이었다. 참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었다.
이내 내 시선은 땅으로 향했고 그때 나는 토끼풀을 발견했다. 눈을 크게 뜨고 네잎클로버를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찾지 못했다. 대신 나는 토끼풀에 있는 꽃으로 친구들에게 반지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어릴 때 자주 친구들과 자주 했던 놀이였다. 우리는 서로의 손에 토끼풀로 만든 우정반지를 끼고 키득거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이 반지가 마치 우리 우정의 상징인 것 마냥.
완벽했던 하루 뒤, 몰려드는 슬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우린 이번 여행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회상했다. 돌아가는 길이 아쉽지 않을 만큼 완벽했던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다음번 여행은 언제, 어디일지 이야기하며 다음번을 꿈꿨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유에유에는 갑자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창문 밖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에서 나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깜짝 놀라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녀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평소에도 우리 중 가장 여리고 섬세한 그녀였다. 그녀는 울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전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내가 떠난 후에 우린 지금처럼 다 같이 일상을 공유할 수 없을 거고, 혹시 우리 중 누구에게 아이라도 생기면 만나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울음은 우리에게 전염됐고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우리가 떨어져 지내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없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깊고 강렬한 감정들을 나눠 가졌으니 말이다. 서로를 만나고 난 이후,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졌다고 믿었으니까. 우리 사이에 변하는 건 없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부재는 남겨진 친구들에게 생각보다 더 큰 공허함을 남겨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떠나는 나 역시 힘들겠지만, 함께했던 그 공간에 남겨진 이들에겐 내가 떠난 후 어쩔 수 없이 나의 빈자리가 눈에 보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그녀들의 진심이 고마웠다.
우리의 첫 번째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 우리는 페이스타임을 하며 작년 이맘때 떠났던 우리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떠난 후 유에유에는 오하이오로, 카밀라는 미네소타로 이사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내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떠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얼마 남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우리가 함께했던 그 일상들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친구들을 못 본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최근에 우린 우리의 두 번째 여행을 도모하고 있다. 삼총사가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위해. 그날이 이 여름을 지나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