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그녀는 미국에 와서 내가 만났던 가장 친절하고 따뜻했던 미국인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ESL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였다.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그녀는 나의 첫 ESL 선생님이었다. 그녀를 보면 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그녀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며 해피 바이러스란 단어가 떠올랐다. 웃는 모습이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주인공 블레이크 라이블리(Blake Lively)를 닮아 있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이곳에 온 애비게일은 영어가 서툰 학생들이 있어도 인내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내가 살면서 만나왔던 선생님 중 단연 최고였다.
미국에 와서 신기했던 점은 한국과 달리 선생님과 학생이 평등한 위치라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성인이 되어 찾은 음악학원이나 어학원에 방문했을 때조차도 선생님이라고 하면 괜히 더 깍듯하게 대해야 할 것 같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선생님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로 만났지만 어느 순간 우린 친구가 됐다. 종종 교실 밖에서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며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는 지역 내에 있는 로컬 카페들과 디저트 카페를 내게 소개해줬고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우리만의 단골 카페들이 늘어났다.
커피타임을 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미국에 와서 느끼는 문화적 차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을 미국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낯선 이에게 물어보면 무례한 질문인지 무지한 질문인지 헷갈릴 수 있는 애매한 질문도 애비게일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항상 친절하게 나를 대하는데 그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질문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었다. 사실 미국인 친구를 사귈 때 가끔씩 나는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형언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기 때문이었다.
복숭아 문화권 vs 코코넛 문화권
Erin Meyer가 쓴 책 <The Culture Map>에는 '복숭아 문화권(Peach cultures)'과 '코코넛 문화권(coconut cultures)'에 관한 개념이 나온다. 복숭아 문화권(Peach culture)에 속한 나라는 대표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이 있는데 이 문화권의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친절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자주 미소 짓는 등 친근함을 보인다는 특징이다. 하지만 복숭아의 씨앗이 크고 단단하듯, 이들과 진정한 친구가 되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 이 문화권이 가진 속성이다. 그래서 이 문화권에서 온 친구와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종종 내적 혼란이 찾아올 때가 있다. 가령, 나는 이 친구와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친구는 그저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이 문화권의 사람들을 보고 위선적이며 피상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사귀었던 또 다른 미국인 친구 덱스터는 이 특징을 잘 보여줬다. 그녀는 언제나 친절했고 항상 먼저 연락해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해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당최 덱스터와 내가 친한 건지 아닌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딱 그 정도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끝이 났다. 내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에서 조차 그녀는 덤덤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나와는 달리 말이다.
반면 코코넛 문화권(Coconut culture)의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독일, 러시아, 한국 등이 있다. 코코넛처럼 겉은 딱딱해 보이고 낯선 사람에게 쉽사리 다가가는 법은 없지만 그 얇은 껍질을 뚫고 들어가면 코코넛의 부드러운 속살을 만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 문화권의 사람과는 일단 관계를 맺는 것이 관건이며 일단 친해지기 시작하면 진정한 친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실 나의 성격이 이 코코넛에 잘 걸맞는다. 낯가림이 있는 편이라 처음 상대방을 만났을 땐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일단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그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나는 넓고 얕은 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복숭아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혼란이 찾아올 수밖에 없던 것 같다. 사실 애비게일과 친구가 되는 과정도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그녀가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면서 선생님이 바뀌게 되었다. 그녀는 가르치는 역할 대신 ESL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교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그녀를 찾아갔다. 때로는 영문이력서(CV)의 피드백을 듣기 위해 찾기도 했고 때론 그저 그녀의 안부를 묻기 위해 찾기도 했다. 그렇게 적어도 매일 하루에 몇 분씩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커피타임 약속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면서 점점 더 사적인 이야기와 고민들을 주고받게 되는 사이가 됐고 비로소 처음으로 미국인과 진짜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헤어짐과 만남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언제 또 보게 될 수 있을까 슬픈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떠나기 전 나에게 우리가 자주 찾던 단골 카페의 로고가 그려진 머그컵을 선물해 줬다.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매일 아침 이 머그에 커피를 마시며 이곳을 추억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내가 텍사스에 잘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봐 주기도 했었다. 내가 이사할 도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ESL 프로그램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봐주고 직접 연락해 문의까지 해줬다. 마침, 그녀의 아버지가 남편이 가게 될 학교의 동문이었다. 이에 애비게일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해 학교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녀의 아버지가 학생이던 시절 룸메이트였던 한 친구가 이 지역에서 목사로 지내고 있었다. 그분을 통해 인터내셔널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해더'라는 한 담당자와 연결이 됐다. 애비게일은 해더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해 주고 내가 새로운 도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애비게일 덕분에 나는 텍사스로 이사오기 전 이곳에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낯선 곳으로 가게 된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하자 애비게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도와줬던 것이다.
애비게일의 이 선의는 내게 큰 도움이 됐다. 텍사스에 와서 해더를 만났고 해더는 내게 또 다른 친구(이곳에서 나의 베프가 될)를 소개해줬다. 낯선 도시에 아는 사람이 생겨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미리 앞섰던 걱정과 두려움은 한 풀 꺾였다. 누군가가 해더에게 나를 어떻게 알게 됐다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해더는 대답했다. "SOL을 진정으로 아끼고 걱정하는 누군가의 연결로 알게 됐다"라고 말이다.
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때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 다시 그곳을 방문했다. 그때 애비게일을 다시 볼 수 있었고 우린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녀가 너무 그리웠기도 했고 텍사스로 이사 온 후 그리웠던 그녀의 따뜻한 미소를 다시 보게 돼서이기도 했다. 또,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가 그녀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임산부가 된 그녀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내가 사귀었던 첫 번째 미국인 친구였던 애비게일은 텍사스에서 내가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씨앗을 잘 심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토리라는 친구를 알게 됐고 지난 1년간 애비게일과 그랬던 것처럼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은 미국에서 나의 첫 경험들을 다채롭게 아름답게 해 줬다. 이 기억은 내가 미국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언제나 큰 자양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