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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 소나무 Jul 04. 2024

에필로그

(12화) 발가락 사이 모래알 

미국에 처음 정착할 때 한국인이 적고 보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주로 가는 게 미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들어본 적도 없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정착하게 되면서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훨씬 앞섰다. 30년간 살면서 5번도 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었다. 정보가 많이 없었기에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특히나 우리가 미국으로 오던 2021년도엔 코로나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제약이 따랐었다. 


맨땅에 헤딩


그런데 처음 이 도시를 조우했을 때,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푸르른 녹음이 가득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왠지 이곳에 살면 한없이 게을러질 것 같은, 특별한 이벤트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조금은 무료하고 심심할 것 같은 동네였다. 도시와의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안전한 동네에 숙소를 잡을 것을 고집했다. 포레스트 에이커스(Forest Acres)란 지명이 주는 느낌에 끌려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 일 년 간 머무를 아파트를 찾기 전에 임시 거처로 에어비앤비에서 지내기로 했다. 집주인은 백인 부부로 웃음이 많은 할머니가 주인이셨다. 대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의를 하신다는 능력 있고 웃음이 매력적인 주인 할머니였다. 할머니 집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이었다. 방의 한편에 자리 잡은 수영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방이었다. 우리나라처럼 형광등이 아니라 여러 개의 스탠드를 켜야 하는 불편함, 심지어 그렇게 선명히 밝지도 않은 노란빛의 백열등.. 전등이 주는 이 불편함은 아마 미국에 사는 내내 편해지긴 힘들 것 같았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바로 다음날 한 일은 바로 아파트 투어하기였다. 아파트에 일일이 전화해 아직 사회보장번호(SSN)를 받지 못했는데 혹시 우리를 받아줄 수 있는지, 8월 내에 입주 가능한 방이 있는지 물어본 후 투어 예약을 잡고 스케줄을 짰다. 미국에서 아파트 구하기가 어려운 건, 우리나라처럼 집주인이 있고 그 사람과 계약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를 소유한 회사에게 나의 신상정보를 넘기고 평가를 받고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입주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우리처럼 유학생이라 SSN가 바로 나오지 않아 SSN가 없고 신용도가 없는 상태에서 아파트에 지원을 하고 허가를 받아내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SSN가 없으면 아애 받아주지 않는 아파트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미국에서 신분 없이 산다는 건 많은 제약이 따르고 서러운 일이 자주 발생하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여러 아파트를 지원하기 힘든 이유가 있었는데 아파트에 지원서를 넣을 때마다 애플리케이션 수수료(Fee)가 따로 들었기 때문이다. 적게는 한 사람당 $50에서부터 많게는 $100까지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 


운전면허증을 교환하러 갔던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서 역시 사회보장번호(SSN)가 없다는 이유로 추가적인 서류를 계속 요구했다. 심지어는 왜 SSN 번호를 받을 수 없는지 미국이민국(USCIS)에 가서 서류를 받아오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직접 방문이 금지된, 철저히 예약제로만 돌아가는 이민국이었다. 전화로 예약 잡는 것조차 너무 어려웠던 나는 무작정 이민국에 '왜 내가 SSN를 가질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서류'를 보내 달라고 무작정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을 기다린 끝에 다행스럽게도 편지를 보낸 한 이민국에서 친절하게도 서류를 보내줬다. 그래서 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온 지 4달 만에야 겨우 운전면허증을 교환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2주간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며 집을 알아보고 구입한 차를 주에 등록했으며 운전면허증을 교환하는 등의 서류 작업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일처리는 매우 느렸고 성격 급한 한국인 중에서도 특히나 더 성격이 급했던 나의 마음은 이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정들어 버린 마음의 고향, SC


예상과 다르게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생활은 행복했다. 물론 언어의 한계에 늘 부딪혔고 한국만큼 치안이 좋진 않았지만 은퇴한 미국인들이 많이 정착하는 도시답게 내리쬐는 햇볕이 따뜻하고 눈부셨고 남부에 있는 도시답게 사람들이 친절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잊지 못할 평생의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는 점이다. 발가락 사이 모래알의 2부에 연재했던 '사캐에서 만난 사람들'에 등장하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처음 입주했던 아파트에서 우연히 만나 이제는 가족 같은 사이가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 오전엔 ESL선생님이지만 밤에는 바텐더로 일했던 정 많던 엔젤(그녀는 나와 친구들에게 컬럼비아의 밤문화를 알려준 좋은 선생님이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바이에나. 그녀는 히스패닉계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었고 두 번째 아이를 입양 입양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베티는 멕시코 인이었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지만 오지랖이 넓어 가끔은 꼰대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처럼 늘 챙겨줬고 내가 떠나기 전 자신의 집에서 성대한 송별회(farewell party)를 열어줬다. 덱스터는 카카오톡을 쓰는 한국을 좋아하는 미국인이었는데 실제로 고려대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한국을 잘 아는 친구였다. ESL 수업에서 만난 나탈리는 러시아인이었지만 독일인이었다. 그녀의 코코넛 문화권에서 온 사람답게 겉으로 봤을 땐 차갑고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실제론 정 많고 웃긴 친구였다. 러시아에서 온 스베타는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친구였는데 그녀의 남편 역시 지질학을 전공했고 남편이 연하이며 그녀 역시 러시아에서 기자로 일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소중했던 사람들 덕분일까.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미국에서 나의 마음속 고향이 되어버렸다. 언제나 그곳에서 생활했을 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고 행복해진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미국의 첫인상이 너무 좋아져 버렸다. 어쩌면 살아가는데 중요한 건 '어디에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구성원과 살아가는가'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많은 친구들이 다른 주로 이사를 갔고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았던 그 2년 동안의 시간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언제나 이곳이 그립다. 2년간 꿈같은 시간을 보냈던 그 시간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에서 살아가데 나의 원동력이 될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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