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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l 23. 2022

완연한 여름이었다

(9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미국인들은 바비큐 하는  좋아하는  같다. 독립기념일 같은 공휴일에도, 집에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에도  그릴 앞에서 무언가를 굽고 있다. 심지어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도 공용으로   있는 그릴들이 상시 구비돼 있다. 마트에는 그릴에서 구울  있는 큼직한 덩어리 고기가 따로 있다.  정도면 이들은 바비큐에 정말 진심인  같다.

우리 아파트에 설치돼 있는 바비큐 그릴. 출처: YE SOL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넓은 마당에서 바비큐를 굽는 장면은 참 평화롭고 여유 있어 보인다. 특히 아파트와 빌라가 주된 주거형태인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느껴 보기 힘든 정서라서 그런지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대신 한국엔 그릴에서 굽는 미국의 바비큐 문화와는 다른 느낌의 우리만의 정서가 있다. 캠핑을 가거나 한적한 시골로 여행을 갈 때면 꼭 챙겨가는 숯불과 석쇠이다. 물론 요즘엔 대부분의 펜션이나 숙소에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장비들이 갖춰져 있어 일정 금액만 내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숯불에 불을 붙여 그 위에 망처럼 생긴 석쇠에 고기를 올려 불맛을 입혀 구우면 그것보다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없다.

고기는 석쇠에 구어야 제 맛!  출처: pxhere


지금은 계곡 정비사업으로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내가 어릴 땐 계곡에 놀러 갈 때면 항상 고기와 불판을 챙겨 가곤 했다. 계곡 중간에 평상이 놓인 곳들도 많았고, 그런 시설이 없더라도 그땐 많은 사람들이 계곡물이 흐르는 바로 옆에서 자신들이 챙겨 온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유년시절을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같은 곳에서 살았기에 이러한 바이브를 매년 여름이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자란 포천에는 백운계곡을 필두로 지장산 계곡, 깊이울 계곡 등 면 단위로 유명한 계곡들이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진 여름방학엔 무조건 친구들과 계곡으로 놀러 가곤 했다. 물론 번개탄과 숯, 고기와 불판은 필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어른들 없이 친구들과 계곡을 간 적이 있었다. 한창 물놀이를 하다가 배고파진 우리는 고기를 굽기 위해 패기롭게 불을 피우고 석쇠에 고기를 올려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고기의 겉이 타기만 할 뿐 속은 익지 않았다. 당황한 우리는 여러 방법을 모색했지만 고기를 낭비할 뿐이었다. 이렇게 점심을 쫄쫄 굶게 되는 걸까 생각이 들 때쯤 한 친구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학교 영어 선생님이 계곡 근처에 사신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드렸다. 평소 수업시간에도 우리를 예뻐하시던 선생님이셨기에 한걸음에 프라이팬과 휴대용 가스버너를 들고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곤 직접 고기를 구워주시기도 하셨다. 시행착오가 많았던 이날의 기억은 학창 시절의 행복한 기억 중 한 조각이 됐다.




물론 계곡을 생각하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매년 8월이면 우리 가족들은 백운계곡에 가곤 했다.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엔 백운계곡의 물길을 따라 빽빽하게 고깃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린 매년 ‘송씨네 갈비’에 가곤 했는데 할아버지의 오랜 지인네라고 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 바로 옆에 넓은 평상에서 구워 먹는 이동갈비는 일품이었다.


그날만큼은 서울에 사는 이모할머니네 가족들, 작은할머니네 가족들까지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친척들이 다 모이면 거의 40명은 됐던 것 같다. 특히 백운계곡에서 모이는 이 날만큼은 참석률이 거의 100%였다. 어른들은 아이들도 데려왔기 때문에 멀리 살아 자주 못 보는 친척 언니, 동생들도 이날만큼은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며 실컷 놀았다. 배가 고파질 때 즘엔 어른들이 있는 평상으로 가 엄마가 구워 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곤 소화시키기가 무섭게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지치면 평상 한 켠으로 가 수건을 덮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그곳에서 온전히 여름을 만끽했다.

 

한국의 흔한 계곡 모습. 출처: Wikimedia Commons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엔 산이 없다. 그저 넓은 평지와 강, 늪이 있을 뿐이다. 기온 또한 매일 38도, 40도에 육박하며 습도 또한 높다. 5월만 되어도 한국의 6월 말 날씨처럼 푹푹 찌기 시작한다. 이 더위는 거의 9월 말까진 지속되는 것 같다. 사계절이 있지만 봄과 가을은 매우 짧고 여름이 일 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온전히 사계절을 느낄 수 있던 어린 시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리워진다.


특히 그때의 여름은 더웠지만 지금처럼 습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에어컨이 없어도 선풍기 하나만으로 시원해지는 여름이었다. 계곡에 도착해 음료수와 수박을 물속에 담가 두면 냉장고에 넣어둔 것처럼 시원해졌다. 완연한 여름이었다. 이제 이곳에 살면서 기억될 여름은 그때의 여름과는 다른 모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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