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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ug 06. 2022

바다가 좋아

(11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우리가 사는 컬럼비아란 도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다행인 건 차를 타고 2~3시간쯤 가면 바다가 있다는 점이다. 머틀 비치(Myrtle Beach)는 동부에서 손꼽히는, 예쁜 해변을 가진 곳이라고 한다. 골프장도 많아서 동부에 사는 부자들이 겨울이면 자주 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더티 비치(Dirty beach)라고 부른다. 마치 부산 사람들이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해운대 두고 더럽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물론 직접 방문했던 머틀 비치는 유명한 명성에 비해서는 조금 실망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처음 가본 대서양의 바다였지만 물은 파랗기보다는 짙은 녹색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동해와 비교했을 땐 파도도 잔잔했다. 하지만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머틀 비치(Myrtle Beach). 출처: YE SOL

워낙 바다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결혼식날 낭독했던 혼인서약서에서 남편은 이렇게 맹세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매년 다른 바다로 여행을 가겠습니다”라고 말이다. 신혼 1년 차인 지금까지 남편은 이 약속을 잘 지켜주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머틀 비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바다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최남단이라고 할 수 있는 키웨스트라는 곳에 다녀왔다.

오버시즈 하이웨이(Overseas Highway). 출처: YE SOL

이 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안도로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중간에 위치한 섬들을 이어 만들어 놓은 도로이다. 오버시즈 하이웨이(Overseas Highway)라고 불리는데 말 그대로 바다 위를 달릴 수 있는 도로이다. 키웨스트 섬도 아름답지만, 이 섬까지 운전해가는 이 도로가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과 바다 사이에 놓여있는 작은 도로를 운전해 가는 기분이랄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키웨스트는 대서양과 걸프 해를 끼고 있는데 바닷물 색이 정말 말 그대로 아쿠아 마린 보석과 같은 색이었다. 이곳엔 ‘헤밍웨이의 집’도 위치해있었는데, 헤밍웨이가 어떻게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는지 이곳의 바다를 보자 알 것 같았다. 키웨스트의 바다는 그 모습 그대로 ‘노인과 바다’의 그 바다 같았다.

아쿠아 마린 같은 색. 출처: YE SOL




사실 내가 바다를 좋아하게 된 건 우리 부모님 때문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은 8월이면 늘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는데 목적지는 거의 다 바다였다. 선택지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서해의 갯벌도 있었지만 우린 늘 동해 바다로 향했다. 동해바다의 푸르름이 좋았고 힘차게 부딪히는 파도의 역동성도 좋았다. 결혼해서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매년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바다에 갔다. 바다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좋아서, 파도가 부딪칠 때마다 나는 소금기 섞인 그 냄새가 좋아서,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따뜻한 모래의 감촉이 좋아서였다. 물론 바닷가에서 먹는 온갖 종류의 회와 숙소에서 바다를 보며 구워먹는 바비큐도 한몫했다.


지난해, 미국에 오기  마지막으로 찾았던 바닷가는 고성에 있는 봉포 해수욕장이었다. 이곳은 엄마와 내게 잊을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왔던 바다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 엄마는 진심으로 할머니를 간호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있던 엄마는 할머니의 상태가 조금은 호전된  보였던 여름의 어느 , 여름휴가를 제안했다. 그렇게 엄마, 아빠, , 동생 그리고 할머니는 함께 마지막 여름휴가를 떠났다. 고성에 있는 봉포 해수욕장으로 말이다. 우리가 봉포 해수욕장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조용하고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동해 바다. 출처: YE SOL

이전에 할머니와 함께 갔던 여름휴가에서 할머니는 바닷물의 감촉도 느끼시고 모래의 따뜻함도 느끼시며 누구보다 즐길 줄 아는 분이셨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저 모래사장에 앉으셔 우리를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수 없으셨다. 몸이 너무 약해지셨기 때문에 물놀이는 무리였고, 너무 뜨거운 햇빛도 부담이 될 수 있었기에 그 마저도 오래 앉아 계시질 못했다. 그래도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순간을 엄마와 나는 그저 즐겼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프신 이후에 거의 집에서만 지내시는 할머니가 바다를 보고 그동안의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길 바랐다. 할머니의 눈 안에 바다에서 즐거웠던 우리들의 표정을 담아드리고 싶었다. 병에 걸리신 후 부쩍 표정이 어두워지신 할머니가 이 순간만큼은 잠시라도 아픔을 잊고 웃으시길 바랐다.


그때 할머니는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유독 슬퍼 보였던 그 눈빛 속엔 어떤 생각들이 담겨있었을까. 할머니도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여름휴가라는 걸 아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오지만 그래도 할머니와 바다에서의 또 한 번의 추억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위로가 된다. 우린 항상 바다에서 즐거웠으니까.

우리의 마지막 여름 휴가 때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출처: YE SOL


미국에 오고 나서 새로운 바다들을 가보고 나니 세상에 똑같이 생긴 해변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색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고, 해변의 모습은 더더욱 다른 모습이다. 그래도 바다를 갈 때마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바다에 갈 때면 난 항상 안도감과 행복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곳,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누군가를 추억할 수 있는 곳, 과거의 한 때를 회상할 수 있는 곳이다. 나에게 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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