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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ug 14. 2022

마이 리틀 포레스트

(12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일주일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드디어 해가 떴다. 여름의 더위는 한 풀 꺾였는지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오랜만에 느끼는 습도 낮은 바람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분 좋은 날씨를 만끽하러 아이스 라떼 한잔을 사 들고 남편 학교 근처로 산책을 갔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청설모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만들어 낸 그늘을 걸으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만끽한다. 걷다가 조금 더워지면 잠시 멈춰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을 들이켠다. 고소하며 쌉싸름한 커피 맛을 느끼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집중해본다.

라떼 들고 산책 한 바퀴. 출처: YE SOL


걷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마주친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커플들부터 개강을 앞두고 캠퍼스를 구경 온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까지 말이다. 그중 나의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아이들이다. 미국 부모들은 벤치에 앉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눈다. 그러는 동안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들은 맨 발로 흙과 나무껍질을 온전히 느끼며 자신들만의 탐험을 시작한다. 아직은 자신의 몸이 감당하기엔 큰 머리 때문에 뒤뚱뒤뚱 위태롭게 걸어가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대로 목표물에 돌진한다. 날아다니는 나비를 쫓아 걷다 넘어지기도 하고, 담장 너머에 있는 식물을 만지기 위해 담장에 바싹 붙어 팔을 뻗는다. 걷다가 길에 눈에 띄는 벌레가 보이면 멈춰서 한참을 쳐다보기도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달려간다. 그러면 멀리서 부모는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는 부모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더 멀리 도망간다.

나무  사이로 청설모가 많이 출현한다. 출처: YE SOL

미국 부모들은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아이가 무엇을 만지고 입에 넣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정말 자연 친화적인 육아방식이다. 나는 아기가 혹시나 벌에 쏘이진 않을까, 개미가 발을 깨물진 않을까, 산책 중인 개가 다가와 위협하진 않을까 보는 내내 조마조마한데 정작 그 부모들은 어쩜 이렇게 태평할까 생각한다. 내가 아이가 생기면 나도 이렇게 자연 친화적으로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평소에도 결벽증과 안전 과민증이 있는 내게 이런 상황에서 ‘놓아버리기’란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흙 속에 아이에게 해로운 병균이 있으면 어쩌지?’, ‘혹여나 지네나 말벌 같은 곤충이 아이를 물면 어쩌지?’ 같은 나만의 공상 속에서 나온 염려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나의 어린 시절은 굉장히 자연 친화적인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어렸을 때 흙 속에서 뛰어놀고 풀과 나무들 속에서 자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말이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 나는 지금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며 왜 이렇게 온갖 걱정이 앞서는 걸까.


이런 나의 상태를 남편은 이렇게 진단하며 추측했다. 자연 속에서 뛰놀며 경험했던 것들이 오히려 내게 트라우마처럼 작용해 그런  아니냐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남편의 추측이 틀린 거라곤 말할  없을  같다. 내가 곤충을 무서워하게  계기가  사건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보면 말이다.



어린 시절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였던 할머니네 집 정원. 출처: YE SOL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외할머니 댁엔 넓은 정원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친척 언니 오빠들과 동생들과 함께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보며 자랄 수 있었다. 어릴 땐 개미를 많이 잡아 가지고 놀았다. 개미를 잡아 우리가 만든 덫에 빠뜨려 보기도 하고 먹이를 들고 줄지어 가는 개미들을 방해하거나 개미집을 발견하면 구멍 안에 음료수를 붓거나 각설탕을 밀어 넣은 적도 있다. 우리가 개미가 먹이 찾는 걸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짓궂은 장난을 넘어 도가 넘은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때 우린 어렸다. 어린아이들의 잔혹한 순수함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우린 그저 개미를 관찰하며 생겨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개미를 더 이상 손으로 만질 수 없게 됐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슬기로운 생활시간에 개미의 몸 구조를 배우면서부터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그림. 개미는 머리, 가슴, 배로 이뤄져 있다는 설명과 함께 커다랗게 그려진 개미의 모식도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나는 그때부터 개미가 살아있는 생물이며 어쩌면 고통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다신 개미를 만질 수 없게 됐고 가장 무서워하는 곤충 중 하나가 됐다.

포도 나무 아래에서 발견했던 죽은 참새. 출처: YE SOL

하지만 이 사건 외에 결정적으로 내가 곤충을 무서워하고 흙이 더럽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네 집 포도나무 근처에서 놀던 우리는 나무 아래 죽어있는 참새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됐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참새를 땅에 묻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참새를 옮기고 평소 우리가 가장 좋아하던 철쭉나무 아래 화단을 파서 참새를 묻어줬다. 나뭇가지로 묘비도 만들어 참새 무덤을 표시해 놓았다.

흙 장난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출처: Pixabay

그러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우린 문득 묻어 놓았던 참새가 궁금해졌다. 그땐 부패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던 터라 우리가 궁금했던 건 그저 참새가 땅 속에 잘 있는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린 참새가 묻혀있는 묘지로 가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화단 밖으로 흙이 쏟아져 나와 쌓이게 될 때쯤 검붉은 흙 속에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인가 깨닫는 순간 우리는 소리를 꽥 지르고 집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죽은 참새 주변으로 흙 속의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들끓고 있었다. 구더기, 지렁이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크나 큰 충격을 안겼고, 그날 비누로 손을 몇 번을 씻었는지 모른다. 동물이 죽어 흙에 묻히면 부패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섭리를 나는 이렇게 직접 경험한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이런 기억들이 쌓여서 일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곤충 포비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나뭇가지 위의 커다란 사마귀를 보고 도망치다 넘어서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난 적도 있다. 마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듯한 그 커다란 눈에 놀라 도망쳤다. 그 작은 생물이 뭐라고. 살인마라도 마주친 듯 급하게 뛰어가다 생긴 상처였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사마귀를 보고 느꼈던 공포가 아직도 느껴진다. 이렇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며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고 나니, 이젠 잠자리 조차도 잡지 못하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됐다. 이젠 집중하면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조그만 개미 때문에 맨발로 흙 길을 걷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자연 속에서 뛰어 놀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출처: Pixabay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긴다면 나는 내 아이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스스로 자연을 탐험하길 바란다. 온갖 종류의 풀과 꽃의 향기를 맡으며 그 안에 살아 있는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고 관찰하길 바란다. 물론 자연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나의 안전 과민증을 무시하고 놓아버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온전히 자연을 느낄 수 있었던 유년시절 덕분에 많은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됐고 그 향과 감촉을 배우게 됐다. 하지만 덕분에 알고 싶지 않았던 자연의 섭리도 깨우치게 됐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배우게 되는 지식은 때론 책으로 배울 때보다 더 생생하게, 깊이 머릿속에 남는 것 같다. 부디 가까운 미래에, 나의 아이가 자연 속에서 뛰어놀아도 태평히 기다리며 바라봐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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