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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Sep 01. 2022

짜증스러운 날엔

(14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임신 준비를 위해 장기간 복용했던 피임약을 끊고 나서 나의 몸은 호르몬의 노예가 됐다. 약을 끊은 직후 2주간은 두통에 고통받았고 오랫동안 나지 않던 트러블도 얼굴에 올라왔다. 무엇보다 적응되지 않았던 건 시도 때도 없이 날뛰는 나의 기분이었다. 


햇빛이 쨍쨍한, 내가 좋아하는 날씨의 어느 날에도 그랬다. 갑작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고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불쑥 짜증 나는 기분이 찾아온 것인지 알 수도 없다. 그저 순식간에 나의 기분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이렇게 괜스레 짜증스러운 기분이 드는 날엔 갑자기 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고 육체만 덩그러니, 시간의 구애를 받는 공간 속에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공간과 내가 분리된 듯한 느낌이 낯선 감정과 함께 찾아온다.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공간이 여기가 맞는지 헷갈리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럴 때 허공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으면, 지금 상황과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주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했던 과거의 하루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마치 이 짜증스러운 감정으로부터 잠시 탈출을 하듯이 말이다. 




어릴 때 외할머니네 집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할머니네 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집 가운데 커다란 목련 나무가 있고 그 뒤편엔 철쭉과 같은 꽃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작은 잔디밭이 있었다. 집 뒤뜰엔 고구마와 옥수수를 심을 수 있는 텃밭도 있었는데 이 모든 곳들은 어린 시절 우리의 놀이터였다. 

그리운 할머니네 집. 출처: YE SOL

해가 뉘엿뉘엿 질 때 할머니의 부엌에서 노을이 지는 걸 바라보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부엌에선 할머니가 불 위에 앉혀 놓은 압력밥솥이 칙칙 소리를 내며 밥이 익는 냄새가 났다. 나는 뒤뜰로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문 앞에 앉아 할머니와 그날 학교에서 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할머니와 수다를 떨곤 했다. 할머니의 은색 빛 압력밥솥은 수동으로 작동하던 밥솥이었는데, 불 조절을 잘하면 솥 안에 누룽지가 생기곤 했다. 할머니는 가끔 그 누룽지를 식혔다가 간식으로 주곤 했는데 할머니가 해준 건 무엇이든 맛있었다. 


노을이 질 때쯤, 텔레비전에서는 ‘6시 내 고향’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할머니는 이 프로그램의 대단한 애청자셨다. 시골 할머니들과 토종 음식들만 나오는 이 프로그램이 뭐가 재미있다고 이렇게 열심히 보시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6시 내 고향’ 시청은 우리 할머니의 빼먹지 않는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럴 때면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할머니가 잘 펴 놓은 이불속에 파고들어 보일러의 따뜻함을 만끽하곤 했다. 할머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매번 고양이 같다고 하셨다. 아, 물론 할머니가 또 나에게 고양이 같다고 하는 때가 있었는데, 세수하러 들어가 얼굴에 물을 대강 묻히고 나올 때였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또 고양이 세수하고 나왔지?”라며 핀잔을 주시곤 했다.

야~옹. 출처: pixabay


어릴 때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할머니네 잔디밭엔 잠자리가 참 많았다. 그러면 우리의 잠자리 잡기 시즌이 시작된다. 기다란 장대 끝에 그물망이 달린 잠자리채를 가져다 휘이휘이 저으며 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어쩌다 잠자리 한 마리가 그물망에 걸리면 우린 조심스럽게 날개를 잡아 꺼내야 했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난도 높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물망을 걷다가 잠자리가 밖으로 날아가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고추잠자리 한 마리의 날개를 잡아 꺼내게 되면 우린 곧바로 할머니를 찾아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우리가 잡아온 고추잠자리의 배 끝에 얇은 실을 매달아 주셨는데 그러면 잠자리를 집 안에서도 가지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잡으면 이렇게 하고 노는 거라고 누가 가르쳐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잠자리를 잡으면 우린 매번 이렇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잡아 놓곤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린 금세 실증을 느꼈고 그러면 매듭지어 놓았던 실을 풀어 잠자리를 다시 밖으로 날려 보냈다. 아마도 잠자리를 잡았다는 성취감을 위해 이 놀이를 했던 건 아닌가 싶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간혹 잠자리 배의 매듭을 세게 묶으면 잠자리가 잘 날아가지 못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매듭은 아주 살살 조심이 묶어야 했다. 우리 할머니는 이 매듭을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적절히 잘 묶어 주셨다. 그래서 우린 잠자리만 잡았다 하면 할머니를 찾아갔다.   


우리가 할머니네 마당에서 타고 놀던 킥보드, 자전거는 주로 할머니네 지하실에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하실에 들어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축축한 곰팡이 냄새와 어두컴컴한 지하실은 어릴 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간혹 공놀이를 하다가 공이 잘못 흘러 들어가 지하실로 빠질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우리는 누가 들어가서 공을 꺼내 올지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하곤 했다. 여기서 지면, 눈 딱 감고 후다닥 뛰어들어가 공을 꺼내 와야 했는데 그럴 때면 계단에 걸려 자주 넘어지곤 했다. 

어둡지만 아늑한 다락방. 출처: pixabay


하지만 다락방은 지하실과 달랐다. 할머니네 집엔 물건을 보관하는 조그마한 다락방이 있었는데 우린 숨바꼭질을 하거나 심심하면 다락방에 기어올라가 그곳을 탐험하곤 했다. 지하실처럼 똑같이 컴컴하긴 했지만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인지 먼지가 많아도 아늑한 느낌이 들곤 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종종 맛있는 간식들을 다락방에 두셨기 때문에 그걸 찾아서 몰래 까먹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다락방엔 곶감이나 한과, 약과 같은 음식부터 과일까지 먹을 것이 한가득 차 있곤 했다. 가끔 선물 들어온 쿠키들도 놓여있었는데 야금야금 하나씩 빼먹곤 했다. 물론 나중에 할머니가 알아차리시곤 또 다락방에 올라갔냐고 우릴 추궁하시긴 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기억의 단편을 꺼내 공상에 빠져 있다 보면 그 기억의 순서는 뒤죽박죽이다. 하나의 공상이 또 다른 공상을 불러일으키고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멍을 때리며 이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다. 짜증을 조금 더 누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지금 느끼고 있는 안 좋은 감정 대신 새롭게 집중할 대상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서른 살이 넘고 나니까 왜 유년시절이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지 알 것 같다. 바쁘게만 지났던 20대 시절엔 남아있는지도 몰랐던 유년시절의 평범한 기억들이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선명해진다. 일상에서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함 속에서 이 기억은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구명조끼 같다. 더 이상 그 감정에 잠식돼 가라앉지 않도록 말이다. 오늘도 그날을 꺼내어 보며 공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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