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할아버지께서 내가 안고 있는 갓난쟁이 둘째를 보더니 첫째에게 물었다.
"동생이 남자니? 여자니?" - 둘째가 생기면 받는 유일한 질문은 이 질문이다.
첫째가 "남자요~" 하고 대답하니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며 "아유 아들을 둘이나~ 장하네 장해~~!!" 하며 웃어주셨다. 그 한마디가 다였지만 마주친 눈빛에서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다, 장하다. 고생했다 하는 마음이 다 전달되었다.
그 말은 내가 둘째를 아들로 낳고 받은 처음이자 유일한 칭찬이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울컥 눈물을 흘릴 뻔했다.
둘째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나는 울었다.
아이가 뱃속에 생기면서부터 여자아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동생이 꿔 준 태몽 - 내가 아주 귀여운 강아지를 두 마리 데리고 와 키우자고 했단다- 을 해석해 보니 강아지가 여러 마리면 여자아이라는 꿈 풀이가 있었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그냥 이 아이는 여자아이구나 하고 이유 없는 확신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보며 아들이라고 하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 근데 내가 초음파를 봐도 아들인 게 보였다.
그 이후 임신 기간 내내 둘째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정도로 나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둘째야 미안해~- 나도 이 정도인데 딸을 갖고 싶어 둘째를 노래 부르던 남편은 말해 뭐 하겠는가. 내게 심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더 실망했을 거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남편은 다른 사람이 예의로 말하는 "형제면 형제, 자매면 자매인 게 애들한테는 더 좋아. 자라면서 친구도 되고."라는 입바른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쩔 수 없지 뭐"가 그의 반응이었다.
임신 소식을 알리자마자 "딸!! 딸이면 좋겠네~~"가 처음 반응이었던 우리 엄마도 뭐 별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으니 체념하듯 "형제면 좋지~ 옷도 물려 입고"가 다였다. 내가 알고 있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처음 본 모든 사람들이 첫째에 이어 둘째도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아들 둘이라니, 쯧쯧쯧... 고생 좀 하시겠네요"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앞으로 체력 좀 기르셔야겠네요~" 하고 돌려 말한 사람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반응이니 나의 둘째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닌 거 같아 나는 서운했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어서 할아버지의 칭찬을 듣기 전까지 그런 반응들을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들을 둘이나 낳다니 정말 장하다, 대단한 일을 했다는 할아버지의 처음이자 유일한 칭찬을 듣고 나니 이전의 사람들의 반응 모두가 서운하게 느껴졌다. 한 생명의 탄생인데.... 그래도 나, 이 아이 낳으려고 열 달의 임신 기간을 고생하고 그보다 더 혹독한 아픔과 힘듦을 경험한 후 아이를 낳았는데 모두들 "너무 고생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말해주기 이전부터 둘째가 아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쉬움과 동정을 표현하다니 참 너무들 했다. 이제야 깨닫는데... 저 진짜 너무너무 서운합니다요!!!!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아버지~정말 감사합니다. 단 한마디였지만 정말 기분이 좋고 위로가 되었답니다. 나도 이제 둘째가 아들이라는 걸 아주 당당히 웃으며 말하고 첫째에 이어 둘째도 아들로 가진 엄마를 보면 할아버지의 위로를 나눠야겠다. "장해요~아주 고생 많이 했어요"
오늘의 수다거리
자녀들이 원하는 성별로 태어났나요?
아들 둘, 딸 둘... 같은 성별일 때 좋은 점, 나쁜 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성별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