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가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장녀 콤플렉스가 좀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임감을 스스로 떠안으며 괜한 걱정과 과한 간섭을 도맡아 하는 오지랖퍼여서
어리광은커녕 오히려 강한 척 센 척을 더 잘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누군가에게
나 힘들다는 소리, 나 좀 예쁘게 봐달라는 소리, 나 여기 있다는 소리 같은 건
잘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런 거 하는 인간도 별로 안 좋아했었다.
가까운 부모 형제한테도
잘하고 있다고 문제없다고 보여주고 싶었고
잔병치레가 많아 아프다는 소리는 많이 했어도
아픈 나를 봐달라는 말은 차마 못 했었다.
병원까지는 데려 가달라 해도 옆에 있어 달라는 소리는 못했던 게 나였던 거 같다.
그런 내가
유일무이하게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
나의 남편.
나는 그에게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오늘은 육아하면서 이게 힘들었고 저게 힘들었고
육아만큼 힘든 게 없다며
하루종일 고되게 바깥 일 하고 돌아온 그에게
쫑알쫑알 하루동안 있었던 고된 일들을 쭉 늘어놓는다.
아프다는 이야기는 매일 빼놓지 않는 일상이 되었다.
어제는 배, 오늘은 머리,
오전엔 손목, 오후에는 무릎, 자기 전에는 허리
순간순간 아픈 곳이 있을 때마다
의사도 아닌 그에게
일일이 나열하는데 안 아픈 곳이 없다는 게 진단의 끝이다.
요새 만난 사람들의 이상한 점, 나쁜 점, 싫었던 점도
그에게는 다 이야기한다.
마음속에만 있고 겉으로는 전혀 들어내지 않았던 속내인데
그에게는 솔직하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고 거짓 없이 말한다.
어차피 그가 만날 사람이 아니라 그런가 단점을 이야기할 때도 거르지 않고 말할 수 있어 속 시원하다.
하기 싫고 힘든 집안 일도 잠시 미뤄둔다.
그가 있을 때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하면
하기 싫던 것도 금방 끝나고
같이 해서 괜히 좋다. 나만 한 거 아니니까 억울하지도 않고.
그리고 이건 정말 유치하지만
유일하게 '나 이뻐?'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다.
머리 모양을 바꾸고 나서
립스틱 색깔을 바꾸고
새 옷을 산 후
꼭 점검받듯이 이쁜지 물어보고
영혼 없는 대답이라도 '이쁘다'라는 말을 받아내야 기분이 좋다.
그는 이런 나의 어리광을 묵묵하게 받아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거 같다.
나의 힘들다는 말에 그도 지치고 속상해했었다.
지금도 때론 받아주고 또 어떨 때는 버거워하기도 한다.
그래도 받아준다. 들어준다.
아프다고 하면 두 아이를 말끔하게 나로부터 분리해서 홀로 육아를 한다.
아프다고 한 부위를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온찜질팩을 데워오기도 하고
일찍 자라고 나를 침실로 들여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 많이 아픈 날, 빨리 와달라고 유일하게 전화할 수 있는 사람. 그이다.
유치하게 '나 이뻐?' '나 사랑해?' 하는 질문을 해도 전혀 낯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당당히 나의 이쁨과 나에 대한 사랑을 명확한 대답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아직까지 정답에 가까운 대답을 잘해주고 있는 그이다.
어쩌면 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를 상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새삼 그도 나에게 어리광을 피운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큼은 아닌데.
그는 나약하고 어리고 어리숙한 모습을 아직도 나에게 숨기고 있는 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