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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Jan 12. 2024

할아버지가 남긴 생각의 흔적

추억이 많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

지훈이 할아버지는 늘 펜과 메모지를 들고 다니시는 메모광이에요.

지훈이 할아버지는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것까지 모두 다 메모하시는 데요. 내용도 가지가지랍니다.


[김지훈 학교 다녀와서 인사 안 함]

[며늘 아가가 아침에 고구마 쪄서 방문함]

[옆집 박 영감이 두부 산다며 천 원 빌려 감]

[오랜만에 뒷산에 산보를 다녀오니 피곤함]


하루에도 몇십 장씩 메모하시기 때문에 

할아버지 서랍 책상 서랍은 모두 그동안 메모해 온 메모지로 한가득이지요.

지훈이는 가끔 할아버지 서재에 가서 그 메모지들을 읽어보는데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모든 것을 메모하실까 늘 궁금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할아버지께 여쭤봤어요

"할아버지 왜 이렇게 많이 메모하시는 거예요?"

"메모를 하면 생각에 흔적이 생기거든"

"생각에 흔적이 생겨요?"

"그렇단다. 생각은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 같아서 있는 듯하다가 금세 사라지지만 

메모에 적어 두면 생각을 묶어 둘 수 있지.

이 메모들은 내가 생각한 것들의 흔적이라 할 수 있어~"

"왜 생각에 흔적을 남기는데요?"

"음..."


할아버지는 서랍을 한창 뒤지시더니 메모지 한 장을 꺼내 읽으셨어요

[우리 첫 손주 지훈이가 태어나는 날

자그마한 것이 내 품에 쏙 들어와 빙그레 웃으니

세상에 이보다 기쁠 때가 또 있을까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를 딱 반반씩 닮아

어찌나 잘 생겼는지 어여쁜 밤톨 같다

건강하고 바른 아이가 되도록 늘 함께 하고 싶구나]

지훈이는 할아버지 메모를 들으니 왠지 할아버지 품에 처음 안긴 날이 떠오르는 것 같았어요.

"이 메모를 읽으니 그때 기억이 생생해지는구나. 너는 정말 작고 귀여웠었지"

할아버지도 그날이 떠오르시나 봐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으셨죠.


잠시 후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세상을 살다 보면은 많은 일들이 일어난단다.

꼭 기억해야 할 것도 있지만 반대로 쉽게 잊히고 기억나지 않는 일들도 아주 많지

굳이 모든 걸 다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생각에 흔적들을 남겨두면 보다 많이 기억할 수 있고 또 기억나게 도와준단다.

인생이 좀 더 풍부해진다고나 할까?"

지훈이는 인생이 풍부 해진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처럼 생각에 흔적들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훈이는 메모지에 끄적였어요.

"메모는 생각의 흔적이다. 메모로 인생은 더 풍부 해진다"언젠가 이 메모를 지훈이가 보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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