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어릴 적부터 동물에 대한 관심이 유독 많았습니다.
코끼리 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덕분에 진로를 결정할 때도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수의학과에 다니며 여러 동물에 대해 배우고, 직접 실습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양한 동물의 뼈 구조와 장기를 익히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딸은 강의 시간보다 실습을 더 즐기는 편입니다.
며칠 전에는 학생들 각자가 닭을 직접 잡아서 품 안에 앉고 강의를 들었다 하더군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떻게 닭을 다루는지 알고 강의를 들으면서 닭의 신체 구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또한 임상 검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알기 위함이라 합니다. 때로는 혈액 샘플을 수집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주사를 하는 등 여러 가지를 배운다고 합니다. 특이한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습니다.
다행히 딸아이가 잡은 닭은 딸아이 품에서 잠이 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친구들은 닭이 가만히 있지도 않고 파드닥 거리기도 해서 쩔쩔매게 한 닭도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품 안에 닭을 품게 하고 닭을 진정시키도록 아랫목을 잘 쓰다듬으라고 가르쳐 줬다고 합니다
수의학과라서 강의만큼 실습도 꽤 많습니다.
뱀, 쥐, 도마뱀 거북이, 토끼 등 가능한 많은 동물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다루어 보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동물을 앞에 두고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듣기만 해도 몸이 움츠러드는데 딸은 그저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를 합니다.
수의학도의 특별한 실습
한 학기를 마치고 딸이 집으로 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딸이 오기 전, 집 뒷 가든에 여우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밤에 가끔 여우가 지나가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 집 정원에서 생을 마감한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다가 죽었는지.. 불쌍하게 싸늘한 가든에서 홀로 죽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우의 사연은 잠시, 어떻게 여우 사체를 치워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카운실에 연락해 치워 달라고 할지 고민하던 중, 때마침 그 이야기를 듣고 딸은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괜찮겠어?"라는 말로 딸한테 막중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해당 카운실에 의뢰하면 분명 며칠은 걸리기도 하고, 여우 사체를 오랫동안 그대로 두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거든요.
딸아이는 학교에서 실습할 때처럼 장갑과 마스크, 장화를 갖추고 뒷마당으로 나갔고, 남편은 딸을 홀로 보내기가 미안했는지 조수 역할을 한다며 딸 뒤를 따라갔습니다.
딸은 먼저 여우가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한 뒤, 뒷다리를 잡아 여우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봉지에 넣고, 이어서 앞다리와 머리를 봉지 안으로 조심스럽게 마무리했습니다. 조수를 한다던 남편은 카메라맨으로 전략하여 멀리 떨어져 동영상을 찍으며 감탄사를 연발하기만 했습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실습에서 익숙해진 덕분인지 딸은 차분하게 사체를 치웠습니다.
그렇게 여우의 사체를 처리하는 딸이 대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한편으론 ‘이런 상황에서 딸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어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우가 왜 죽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가 여우사체를 밤새 가든에 두지 않아도 된다는 심란함이 사라졌습니다.
딸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