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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후,백호가 된 여자의 우아한 반란

40대,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by 런브



결혼 전, 시어머님은 나름 용하다는 지인에게 나의 생일을 주고 사주가 어떠냐고 물어 보았다.


용하다는 그 분은 날 본 적이 없지만 생년월일을 보고 내가 40세 이후로 백호가 된다고 했다고 한다.


'백호살이 있다나 뭐라나…'


무엇을 보고 이야기한 것인지 신뢰가 가지 않지만, 시부모님과 남편은 근거 없는 소리에 용하다는 지인에 대한 철떡같은 믿음 때문인지 장난스럽게 늘 '백호'라는 단어를 툭툭 던졌다.그 의미는 제가 앞으로 강한 성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나를 생각해보면,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며 수줍음을 많이 타던 여자였기에, ‘정말 내가 백호처럼 변한다고?’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 순수했던 20대시절 나의 성향에 상상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결혼을 해서도 주체적으로 살기보다는 남편과 다른 사람의 결정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왠지 스스로 내린 결정이 자신 없었고, 책임지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늘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고 결정을 맡겨 버렸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컬러를 맞추어 가며 시간을 맞추고, 생각을 맞춰 나갔다.



‘착하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솔직히 ‘착하다’라는 말을 앞세워 나의 줏대 없고 우유부단함을 감추며 살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모습이 가끔 바보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큰 폭풍우가 닥쳤다. 그 사건을 계기로 지푸라기처럼 책에 매달리게 되었고, 책 속에서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점점 스스로를 돌아보았다.여러 삶들을 읽어 내려가며 나를 찾아가기 위한 용기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아, 이제는 인생 전환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씩 주체적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많은 변화 중 하나가 나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돌아서서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왜 눈물이 나는지 말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당당하게 내세우고,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면 추진하고, 포기해야 하는 일에는 과감해지며 하고 싶어 하는 일에는 도전장을 내민다. 상황에 대한 나의 의견과 생각을 알려주며 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 아직은 서투르지만, 말해야 할 때를 결정하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른 모습에 옆에 있는 남편은 말한다.


“너 갱년기인가 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모습에 갱년기로 나를 위로하고 토닥거린다. 그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지만, 또한 내 나이를 보니 완강히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갱년기인지 아니면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한 제2막인지 모르겠지만, 남은 인생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잘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가 찾아왔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남들이 정한 색깔에 맞추어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색깔을 찾아보고자 하니 주변에서 “왜 이러냐”고 놀라는 친구도 있다. 스스로도 새로운 걸 시도하고 표현하다 보니, 행동과 말에 후회도 하고 스스로도 놀란다.



누군가 장난처럼 “백호가 된다더라”며 놀리지만, 나는 이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고, 나에게로 향한 여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깨에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고 싶다.



갱년기인지, 아니면 그 용한 시어머님의 지인이 예언한 "백호"가 되는 삶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결코 예전처럼 남의 결정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가끔은 “너 왜 이러니?” 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도 있지만, 이 방법이 맞는지, 저 방법이 옳은지 끊임없이 물어보며 살아가고 싶다.


‘아낌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겠다’는 나의 작은 다짐.


이 다짐 안에서, 남편이 말한 갱년기가 진짜든 아니든, 나는 오늘도 백호 같은 나로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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