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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살다 보니 불편한 점 #2

공공 서비스의 극악무도한 속도

by 런브


요즘은 웬만한 은행 업무나 공공 서비스가 AI와 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도 서서히 변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이 남아 있어, 간단한 업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영국은 대부분의 업무를 대면으로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 소요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은행 창구가 10개 넘게 있어도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3~4명뿐. 그마저도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동네 주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일을 한다. 물론 그들도 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 영국에서는 일상이었다.


영국은 노동자의 인권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나라다. 하지만 그만큼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도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나도 내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손님이 많아도 일하는 직원 수는 적을지라도 느긋하게 일한다. 빠른 서비스보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처럼 빠른 일처리를 기대하면 답답할 수도 있지만,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영국의 직장 환경은 꽤 안정적이고 보호받는 구조다.




영국은 은행 계좌 하나 개설하는 데 2주 이상 걸린다.

예약을 먼저 잡고 방문해야 한다. 예약도 원하는 날에 할 수도 없다. 담당 직원이 나오는 날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은행에 방문 후 필요한 서류 제출과 신원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시간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든 서류가 은행 본점으로 가서 2차 확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이 나서 카드를 받기까지 또 1~2주, 비밀번호는 따로 우편으로 날아온다. 결국 단순한 계좌 개설 하나에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영국에서 살다 보면 인내심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숍 계산대 직원은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할머니는 장바구니를 천천히 정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도 조용히 기다린다. 이 중에서 나만 속으로 레이저를 쏘며 조급해진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보지 못했다.

은행 업무도 공공 서비스도 빠르게 처리되니, 기다리는 시간이 벌어지는 시간이나 다름없다.

몇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신원 확인부터 계좌 개설, 카드 발급까지 한 번에 끝났다. 너무 빠르게 해결돼서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이렇게 편한 세상이 있나?’ 싶었다.


영국에서 20년을 살다 보니 이런 차이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여전히 영국의 느린 업무 처리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제는 적응이 되어 하루 만에 일이 해결되면 ‘오늘 운이 좋은 날이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이제 웬만한 일에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가 아플 때나 급한 일이 생기면 속이 터질 것 같다. 영국에서 느는 건 영어 실력이 아니라,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얻은 인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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