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조율, 콘트라스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by 마혜경


관객은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 프레임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금 급속도로 달리는 트레일러가 있다고 치자. 스크린은 폭주하는 스피드에 관객의 시선을 싣고 질주한다. 질주가 절정에 오르면 종종 총을 겨누게 되는데 이때 총소리는 관객의 심장을 관통하고 관객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모든 장면에 의심 없이 빠져들게 된다. 반면 한 컷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멜로는 관객을 스토리에 푹 담갔다 꺼내어 분위기에 머물게 만든다. 카메라 시선에 고정된 관객은 순간에 매료되어 주저앉고, 다음 장면이 손을 뻗어 일으켜 주지 않는 한, 일어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속도는 중요치 않다. 스크린이 관객을 어디로 어떻게 유도하느냐가 관건이다. 스토리는 언제나 관객과 동행하길 원한다. 기존의 장르에서 비껴난 새로운 작품들은 어떨까. 관객의 호응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장치가 필요하다. 낯선 이념과 욕망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관객을 색다른 세상으로 초대한다. 이런 작품이 갈수록 인기를 얻는 이유는 뻔한 스토리를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와 보편성보다 개별성을 중시하는 시대적 배경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어긋나고 부러지는 작품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성장을 유도하는 작품이 독자의 마음을 열게 한다는 의미이다. 요즘 인기가 한창인 퀴어 작품도 여기에 해당한다. 퀴어 영화는 역사가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 대중적이지 못한 관계로 소수의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 승격되면서 퀴어에 대한 이념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참여국이 늘어나고 엄선된 작품들이 선보이면서 낯설고 궁금한 문화로 인기 상승 중이다. 2020년 국내 개봉한 퀴어 영화를 만나보자. 1월에 개봉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가 유망주로 여긴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의 네 번째 작품이다. 개봉과 동시에 뜨거운 호응을 얻은 이 작품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여성 버전이라는 해석이 많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영상미를 담당했다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대상과 화가의 시점이 극치에 도달한 참여 예술이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 종려상을 수상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말의 어느 작은 섬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결혼을 해야 할 귀족 여성과 그녀가 결혼할 수 있도록 초상화를 그려야 할 화가의 첫 만남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녀들이 이루는 대립구조는 어느 지점에서 조화를 이룰까. 그것은 바로 콘트라스트! 사랑을 조율하는 색다른 경험, 콘트라스트 세계로 들어가 보자.


콘트라스트(contrast)는 하나의 물체를 다른 물체 또는 배경과 구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각적인 차이를 말한다. 하이라이트(Highlight)와 섀도(Shadow)의 밝기 차이를 의미하며, 피사체 또는 필름이나 인화지 상에서 밝고 어두운 정도의 농도 차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콘트라스트가 강하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화면의 색상이나 밝고 어두운 정도의 차이가 정상보다 큰 경우를 말한다. '차이'에서 오는 미美와 추醜는 밝음과 어둠의 대비 또는 차가움과 따뜻함 등 서로 상반되는 존재 그 자체로 강렬함을 극대화한다. 때로는 상반되는 경계가 부조화를 낳기도 하지만, 대체로 콘트라스트는 정반대 위치에 존재하는 두 대상의 거리와 그것이 자아내는 조화를 말한다. 계급과 지향점이 다른 두 여인이 한곳에서 만났다. 그렇다면 그녀들이 만든 콘트라스트는 어떤 모습일까.





지루한 VS 유쾌한



스크린은 마리안느가 학생들과 그림 수업하는 장면에서 빠르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어지는 배경은 브르타뉴의 외딴섬, 마리안느(노에 미 멜랑)는 초상화 의뢰를 받고 귀족의 저택에 들어선다. 백작부인이 밀라노 귀족 집안과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초상화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망상으로 현실과 멀어진 딸에게 산책 도우미를 가장한 접근을 부탁하며, 자신은 여행을 이유로 잠시 집을 비우게 된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첫 만남은 지루한 한 장의 그림처럼 단조롭다. 엘로이즈가 자주 푸른 바닷가를 향해 달려가는 이유는 막연함과 답답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엘로이즈에게 귀족 생활은 지루함의 연속일 뿐 어떠한 희망도 즐거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섬에 고립된 귀족의 삶과 브르타뉴의 외딴섬이라는 배경이 엘로이즈의 고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백작부인의 부재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그리고 하녀 소피(루 아냐 바야 미스)에게 축제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녀들은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하녀 소피의 임신 문제에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귀족과 하인의 입장이 뒤바뀐 유쾌한 장면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어떤 사실을 화폭에 담을 때 평면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귀족과 화가의 케어를 받는 하녀가 가당키나 할까. 세 여자는 여자에게 의무처럼 따라오는 결혼과 출산 문제를 당당하게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이들은 이제 동등한 위치가 되었으며, 마을 여인들의 캠프 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축제는 무르익어간다. 엘로이즈는 지루한 삶에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인물이다. 그녀의 심리 변화가 처음으로 목격된 장면은 캠프파이어 중 드레스에 불이 붙었을 때이다. 귀족의 상징, 자신의 드레스 끝자락에 불이 붙어도 놀라지 않고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후에 펼쳐질 스토리의 기준이 된다. 이제 관객들은 엘로이즈가 지루한 과거를 애도하며. 유쾌한 내면을 위해 강한 콘스트라스를 필요로 하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나 VS 너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처음으로 가까워진 장소는 바닷가 동굴 속이다. 바다를 거닐다가 들어가게 된 동굴은 잡음과 복잡한 시선에서 두 여인을 구원하는 공간이 된다. 아름다운 배경과 광활하게 펼쳐진 바닷가의 전경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두 사람에겐 너무 큰 무대이다. 사랑에는 큰 무대가 필요 없다. 오히려 적당한 어두움과 밝음 속에서 오롯이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동굴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명징해지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더 자신답게, 상대에게 또렷한 '나'로 인지될 수 있는 동굴에서는 아름다운 배경과 색감이 필요하지 않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선만 중요하다. 이들의 동굴 밀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택으로 이어졌으며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강렬해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이 마주 봐야 한다면, 두 사람은 각자 건너편에 존재해야 한다. 마주 본다는 것은 시선의 관점에서 반대 개념에 위치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옆에서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편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프레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발생하는 '나'와 '너'의 콘트라스트는 아름다운 대비를 그리며 조화로운 좌표를 찍게 된다.







붉은 VS 초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강렬한 색채를 감상하기에 좋은 작품이다. 작품 초반의 무채색 분위기는 뒤로 갈수록 컬러풀한 색을 입는다. 마리안느의 붉은 드레스와 엘로이즈의 초록색 드레스는 비슷한 비주얼이지만 보색 관계로 각자 강한 어조를 담고 있다.




마리안느가 입은 드레스의 붉은색은 컬러 중에서도 파장이 가장 긴 색이다. 인간의 시각이 가장 잘 반응하는 색으로, 어원은 '불'에서 파생되었으며 예로부터 귀족 또는 왕족 계층들이 사용하는 색으로 유명하다. 서양 문화에서는 흥분, 에너지, 열정, 행동, 위험으로 활용되며, 동양에서는 축하, 번영 등으로 사용된다. 전반적으로 긍정적 의미를 지닌 컬러가 붉은색이다. 심장과 관련된 생명, 사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이식하면 금지, 경고로 전달되기도 한다. 다양한 해석 중, 작품 속에서 마리안느가 입은 붉은색 드레스는 예술가의 열정과 금기에 대한 소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주어진 주문대로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는 절제와 예술성 사이에서 마리안느의 내면은 붉게 타오르고 있다. 또한 엘로이즈를 향한 열정과 사랑을 상징하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언제나 '타오르는' 마리안느의 열정을 의미한다.


엘로이즈 드레스의 초록색은 생명, 회복, 자연, 자유, 에너지를 의미하며 관찰과 호기심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다. 엘로이즈는 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의 실수로 다시 지하세계로 끌려가는 이야기에서 자신이 곧 밀라노로 가게 될 것을 유추하지만, 유쾌하게도 백작부인이 자리를 비운 짧은 기간 동안 그동안 살아보지 못한 자연스러운 시간을 갖게 된다. 초반 엘로이즈가 입고 있던 경직된 남색 드레스에 비해 그녀가 선택한 초록색은 그녀의 살아있는 내면을 시원하게 밝히는 컬러로 작용한다. 그녀들이 발현하는 컬러는 콘트라스트가 강하다. 극도로 대비되면서도 감각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나'와 '너'의 아름다운 일치가 아닐 수 없다.




네가 나를 볼 때 나는 누굴 보고 있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후반부에서는 한 여인을 회상하는 그리움과 현실감이 공존한다. 그림은 순간을 고정시키며 과거의 추억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과거는 이미 결과적이고 변화될 수 없는 시간이지만, '타오르는'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지속성이다. 이 부분에서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엘리오(티머시 샬라메)와 올리버(아이 해머)의 이별은 언제든 다시 재회할 수 있는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이별 후 각자가 겪어야 할 삶은 단조롭거나 끌려가는 삶이 아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이별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도 한 편의 초상화를 보듯이 섬세하고 각별한 만남이 된다. 두 사람이 이별하고 세월이 흘러 마리안느는 우연히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만난다. 초상화를 바라보는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의 시선이 하염없이 다가온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지만 정작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보고 있다. 건너편에 서있지만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콘트라스트의 비밀, 두 사람은 내적으로 강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엄격했던 고전주의를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항해를 떠난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엘로이즈는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그동안 자신도 철저한 공식에 맞게 살았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초상화는 수정이 가능하다. 계산과 아름다움이 전부라고 여겼던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가 처방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이제 엘로이즈의 포즈는 자세라기 보다 춤에 가깝다. 엘로이즈에게 갔던 시선이 캔버스에 형상화되는 일련의 과정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이다. 관찰과 교감으로 완성된 그림은 자연스러운 명작이 된다. 그동안의 예술이 절제를 고집하며 계산된 미를 추구했다면, 이제 그녀들의 예술은 공존이라는 공간에 주사위를 던지듯 유쾌한 놀이가 되었다. 하나의 시선이 주도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선의 충돌이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녀들의 미학은 고도로 내추럴하다.






그림은 감상하는 사람을 위해 소실점을 제공한다. 초상화는 표정과 포즈, 태도로 다양한 궁금증을 제공한다. 드레스 자락이 갑자기 불에 타오르듯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추억에도 붉은 횃불이 타오를 것이다. 추억은 '타오르는' 것이며, 추억이 된 사랑도 영원히 ' 타오르는' 그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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