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에는 이유가 없다

얼마나 깊을까... 아주 멀까...

by 마혜경



순간의 느낌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흐릿한

물에 대한 기억이 있다.

강이나 바다, 호수를 지날 때마다
일관되게 떠오르는,


자주 오가는 한강 다리를 지날 때에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저 물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위에서 아래까지 얼마나 멀까.
가까이 들여다보는 날에는 온종일 말이 사라진다.



Ian Keefe | Unsplash







일곱 살 아니면 초등학생 때일까.

사촌 오빠들인지 아빠 제자들인지 함께 청평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노를 젓는 얄팍한 배를 탔고, 오빠 둘은 배 중간쯤에 서서 자리를 잡은 후, 다리를 벌려 균형을 잡고 각자 양쪽으로 노를 저었다. 나와 동생은 각각 배의 양쪽 끝에 앉아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고, 배는 잔잔한 물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나는 얼마 전 배운 동요를 불렀고 배는 적당히 출렁거렸다.



어느 정도 깊이가 느껴지는 강 한가운데 도달했다. 오빠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담배를 피웠고, 왠지 모르게 깔깔 웃었다. 심심하던 동생이 손을 뻗어 물을 내 쪽으로 뿌렸다. 옷이 젖었다. 나도 손으로 물을 할퀴다시피 낚아채 동생을 향해 뿌렸다. 골이 난 동생이 내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 왔다. 다가오는 동생을 피하기 위해 두 발을 물속에 담갔다. 몸을 빠르게 돌려 두 손으로 배 끝을 잡았다. 물속에 몸을 허리까지 숨겼다. 배 끝에 매달린 내 두 손을 동생은 세게 때렸고, 그 순간 나는 두 손을 놓았다.



paxsonwoelber | Unsplash



어떤 일은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변에 누가 있든 인지할 수 없는 惡의 한순간을 만든다. 사이즈가 작은 구명조끼의 답답함은 왜 하필 그 순간에 일어났으며, 뭐에 팔렸는지 두 오빠의 시선은 왜 그 순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졌는지, 주변 사람들의 폭소와 아우성은 왜 그 순간에 질리도록 폭발했는지, 물이 깊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그 순간에 백지가 되었는지, 옷보다 목숨이 젖을 수 있다는 걸 그 순간엔 왜 바보처럼 못 챙겼는지, 그런 어이없는 일이 왜 그 순간 우리에게만 생겼는지.


모든 시간이 멈췄는데 왜 나에게만 정밀하게 작용했는지.







잔인한 변명처럼 결과적으로 세상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방관에서 좀 가벼워질 수 있는 걸까.




순간이든 우연이든 어떤 일은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변을 잠시 정지 상황으로 만드는 걸까.
성인이 둘씩이나 있어도, 주변에 많은 눈이 있어도, 그 일이 마땅히 생겨야 할 일이라면.
그 일은 순_식_간_에 일어나고야 만다.



Silas Baisch | Unsplash




동생이 내 손을 세게 때렸고,


나무 재질의 배 끝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나는 놓았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투명한 물방울이

비눗방울처럼 위로 빠르게 올라간다.

가라앉는다.

발이 닿지 않은 채 가라앉는다.

가라앉는 건지 멈춘 건지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본다.

하얀빛과 함께 가라앉고 있다.

아무도 허우적대지 않는다.

그냥 가라앉을 뿐이다.

가라앉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래도 부를 수 없으며

발이 닿지 않은 채 가라앉을 뿐이다.

언제까지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에 없다.

한참을 잤는지 그대로 계속 가라앉았는지 눈을 뜨니, 눈이 퉁퉁 부은 오빠들이 아빠와 구조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난 더 이상 가라앉지 않은 채 그대로 또 잠이 들었다.
동심이 내게는 효력이 있었는지 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다행히 없었다.


단지 그날 이후 내게 생긴 병이라면

물의 깊이를 궁금해하는 거.

언제라도 강이나 호수를 만나면
어른이 된 지금도 잊지 않고 묻는 말,




여기 얼마나 깊을까... 아주 멀까...




어떤 일은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나 깊은 깊이를 준비해야 할까, 얼마난 먼 거리를 준비해야 할까.


bjorkman | Unsplash



어릴 때의 기억이 내 안의 강을 바라보게 한다.
심연에서 잠시 표류 中

얼마나 깊을까...

아주 멀까...



어떤 일은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나 깊은 깊이를 준비해야 할까,
얼마나 먼 거리를 준비해야 할까.
어떤 일은 정말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누구도 인지할 수 없는 惡의 한순간을 만드는 걸까.







세월호 6주기,

그리고

김은석(금은돌)시인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 이 아침,

가슴에 안개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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