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집

그곳엔 어떤 정서가 흐르고 있을까

by 마혜경


이러다 두 번째 생일을 맞을까 걱정이다
여기의 기억을 잊고...
하루빨리 적응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위탁모 이금선 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코로나19 사태로 법원 업무가 중단되고 세계가 팬데믹 상태에 빠지면서 해외 입양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4월로 잡은 예비 양부모 출석일이 6월로 지연되면서 잠시 위탁하고 있는 아이를 당분간 더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절차의 지연과 계획이 어긋난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15개월 이후 입양된 아이는 기억이 제 역할을 하면서 새 환경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금 보호하고 있는 아이가 18개월을 넘어, 정을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하루가 멀게 촘촘해지고, 관계는 더욱 끈끈해질 테니 아이는 분명 엄마의 품을 안 떨어지려 할 것이다. 상처 받을 아이를 생각하니 그녀의 가슴은 아침마다 무너진다. 위탁모가 다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녀가 짓고 있는 기억의 집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것이야말로 기억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아이가 미래에 짓게 될 집에 대한 예의.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잊지 않고 머리에 새기며 보존하는 일이다. 언제든 다시 꺼내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 기억은 나머지 기억과 어떻게 어울릴까. 앞의 기억과 뒤의 기억은 어떻게 타협할까. 타인과 자신이 만든 기억은 어느 지점에서 평행을 이룰까. 망각은 기억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수시로 일어나며 기억해야 할 내용에 공간을 양보한다. 살면서 경험한 일은 저장 또는 소멸되거나 아예 저 깊은 곳에 묻혀 생각지도 않은 상황을 조우하게 된다. 이런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기억되길 바라며 기억하길 원한다.



누구나 기억의 집이 있으며, 우리는 타인의 기억 속에 얼마 간의 집을 짓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손에 블럭을 들고, 바닥 또는 벽을 쌓기 위해 구상 중이다. 아이의 집에 쌓던 블럭이 사소한 추억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그녀와 달리, 내 집만큼은 더 단단하게 고정되길 바라고 있다. 그녀는 입양될 아이가 새 부모와 더 큰 기억의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지만, 지금 난 무엇을 바라고 있나. 한 조각이라도 더 쌓으려고 막 집어 든 고집이 순간 내 기억 속에서 산산이 흩어진다.





혹시 우리는 타인의 기억 속에 단단한 집을 짓고 그 안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아니 이걸 기억 못 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며 입꼬리를 내리는 사람은 아닐까. 기억을 기억하도록 독려하고 그것도 모자라 각인시키는 일을 관계라는 이름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기억에 돌 하나 얹은 일로 집이 완성될 리 없는데도 다그치며 주인 노릇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한가한 노력으로 집이 완성될 리 없는데도 말이다. 금이 가고 흔들려야 뒤늦게 깨닫는다.


오히려 아픈 사람의 기억이 건강하다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다듬고 단정하게 정리한다. 타인의 기억 한켠에 심어 두었던 추억도 자주 펼쳐 촛불을 켜듯 밝힐 줄 안다. 가끔 만날 때마다 그때 참 좋았어요, 라든지 고마워, 라는 수채화 같은 기억을 하나 둘 소박하게 꺼낼 줄 안다. 그들의 집에는 '그때도 말했는데 기억 못 하다니 서운하네'라는 문장은 애초에 입장 불가라 구경할래야 할 수도 없다.


정신이든 육체든 제대로 아파 본 사람들은 강요나 집착만으로 집을 짓지 않는다. 기억의 집이란 이런 게 아닐까. 치매나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자신의 이름은 잊어도 사랑하는 이름을 꼭 쥐고 있는 것은, 비록 그들의 집이 가난하지만 누군가의 빛이 정성을 다하고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집에는 비워도 비워도 채워지는 샘물 같은 정서가 흐르고 있다.


집이 클수록 살림도 많아진다. 구색에 맞춘 잣대나 형식들로 채우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 찾고자 하는 기억들을 꺼내려면 단단한 벽이나 문짝에 눌려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찢어져 자주 오류가 나는 것이다. 모셔둔 기억들을 다시 꺼냈을 때, 예전의 모습이 아니고 엉성하다면 채우는 방식에 의문을 가져야 할 때이다.



Jakob Owens


기억의 집은 흐르는 강물처럼 드나듦이 넉넉해야 크고 작은 기억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오고 갈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짓고 있는 집의 이름이 아집은 아닌지 언제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집요하게 기억 하나를 붙잡고 자리를 내달라 욕심 부리면 그 기억은 상처가 된다. 마침 오늘은 기억의 집을 정리하기에 햇볕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자. 답답한 포장은 벗겨내고 눅눅한 부분은 햇살에 잘 말리자. 내 기억의 집에 잔잔한 정서가 흘러가도록 길을 내어주자.






6월이 되면 그녀와 아이는 이별한다.

아이가 새 부모 품에서 사랑으로 자라기 위해

그녀와 아이의 이별이

서로의 기억에 집을 짓지 않고

한줄기 찰나의 빛으로 흘러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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