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와 閑談하다

심심한 일상을 질겅질겅 씹다가

by 마혜경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역시 사람들이 많다.

벽쪽 테이블에는 네모 반듯한 노트북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활자를 틱틱 티디딕 튕긴다. 반대편 창가에는 책들이 날개를 펴고 막 날아가려는데, 손가락이 깃털을 붙잡기라도 하는듯 실랑이 중이다. 제목이 재미있다. 밤의 징조와 여인들.



밤의 징조와 여인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옆 사람이 쥐고 있는 전기설비 이론서에는 야광색 밑줄이 옆으로 흐르고있다. 역시 전기와 야광색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카페 중앙에는 중년 여자와 남자가 부동산 계약 때문인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대화한다. 여자는 살지말지 고민하지만, 여자가 사야 뭐라도 떨어지는 남자는 이런 거 이젠 두 번 다시 없다고요 말한다. 두 번 다시 없는거라면, 자기가 사면 될 일이지. 논리가 엉켜있다. 어딜가든 두 사람이 하는 대화를 잠시라도 듣는다면, 누가 갑이고 을인지 곧 알 수 있다. 지금은 여자가 갑으로 보이지만 결국 남자가 갑처럼 행세할 것이다. 그래야 '나쁜 남자'로 등극해서 멋이라도 누릴 테고, 그게 아니라면 상대의 결정에 잔가지라도 쳐야하니 연기는 필연.

약한 것에는 강한 대처.

두 번 다시 없을 고약한.



주문하려고 긴 줄에 매달린 사람들은 앞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중간쯤 긴 목도리를 둘이 친친 감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우리 뭐 먹을까 난 치즈 케익,

난 스콘 그리고 아_메_리_카_노를 합창한다.

둘만의 화음이 본인들은 좋겠지만 앞에 홀로 서있는 남자에게는 쳇, 뭐래 목도리는 뭐야, 아주 지랄들이군, 이 모든 것은 닭살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바리스타는 흰 셔츠에 브라운 앞치마를 하고 모자까지 멋드러지게 쓰고 있다. 지니라도 부르는 듯 램프 비슷한 걸 들고 흔들고있다. 칫 뭐야 그냥 주라고 왜 쇼를 하냐고 빨리 하기나 하라고 홀로 선 남자는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린다.






휴, 내 자리는 어디에.



창을 통과한 햇살이 작은 테이블 위에 쪼개진다.

난잡한 중앙을 지나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 위 아니 햇살 위에 머풀러를 올려 놓는다.

빛은 빠르게 머풀러 위로 올라 앉는다. 머풀러를 다시 들어 빛 위에, 빛은 다시 머풀러 위에. 세상엔 반전이라는 게 있는데 이렇게 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따위 현상은 누가 만든걸까. 빛을 제압할 수 없다는 자괴감만 머풀러에 스며들었다. 가방을 왼쪽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켠다. 자몽허니블랙티를 주문하고 자몽허니블랙티를 받아온다. 뜨겁지만 마시고 또 마신다.

로그인.

며칠 전에 저장한 글을 꺼낸다.

읽는다. 쯧쯧.

세 번째 단락부터가...

지운다... 삭제.


디디딕 틱

드레그. 삭제.


자몽허니블랙티.


생각한다. 이어서 쓴다.


자몽... 마신다.

지운다.

허니티. 마신다.

삭제.

드레그.


Back.


머리가 하얗게 삭제된다.

순간 카페 안 모든 소리가 날개를 편다.






틱틱 티 디디딕 틱

여기요 디디디 딕틱

밤의 징조와 여인들

여인들과 밤의 징조

징조와 티 디딕 틱틱 전기 설비란

티 디디딕 쳇

난 치즈 케익 딕 틱 징조들

난 스 으으으 코오

밤의 쌩 쇼를 징조하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이 사야할 시기라니까요 아 뭐래

한 쌍이네 전기가 통하면 징조가 쯧쯧

자몽 허니블랙티 쳇, 디디

고민이네요 아_메_리_카_노

징조들 아니 틱틱 티디딕 두 번 다시

.

.

.



일순간의 소리들이 침잠한다.

노트북을 덮는다.

허락된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책을 꺼낸다.

사람들이 병아리처럼 입을 오므리고 차를 마실 때

책 속에서 한 남자는 죽어간다.

에스프레소가 라떼가 휘핑 올라간 블랜디드가 페퍼민트가 홍차가 아메리카노가 자몽허니블랙티가 누군가의 식도를 넘어갈 때 한 남자의 식도는 수면제와 물을 넘기고 있다.



한모금의 죽음이 식도를 넘어가고 있다.



번 다시 기회가 없을거라는 사람도

목도리를 감아주는 여자도 어디에도 없다.


출처 / 아미 미술관


이런 말도 안되는 세상,

이 모든 찰나의 지루함을


드레그


삭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모든 소리가 내몸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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