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겨울이 모호해졌다. 눈다운 눈을 구경한 건 고작 한두번이었나. 지난 겨울, 제주도는 23도까지 기온이 올라 반팔 차림의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제 겨울인지 봄인지 사계절 옷이 서랍에 공존한 지 오래다. 사람들이 움츠러드는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는 하얀 눈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눈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면 겨울은 어떤 이유를 달고 다가올 수 있을까. 내 안에 침잠한 기억들은 어떤 필요를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을까. 추운 기온과 눈에 대한 느낌에 기대어 겨울을 기다린다.
하얀 눈을 바라보면 숙연해진다. '雪'이라는 글자보다 '白'이라는 의미 그 자체가 나를 침묵하게 한다. 눈은 생각을 지운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하얗게 지우고, 나만의 누르는 힘으로 첫눈에 발자국을 각인한다.눈은 지붕과 거리를 덮으며 세상의 소음을 자신의 가슴에 품는다. 금세 끝나버리는 눈의 여행은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 자신의 無를 전달할 뿐이다. 시끄럽게 내리는 눈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간간이 들리는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우박이나 진눈깨비에속을 때가 많다. 눈은 말이 없다. 공기에 저항하던 소리는 어디에 꼭꼭 감추었는지 아무 소리도 소유하지 않는다. 눈을 보고 침묵과 고요를 추구해야할 이유는 이렇게 많다.
비는 어떨까.
JanFillem
아침부터 잔뜩 흐리더니 밤부터 내린 비가 이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는 눈의 아름다움에 가려져 눅눅하고 칙칙한 이미지가 강하다. 사람들은 눈을 좋아하면 낭만적이라 하고, 비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궁상맞다거나 내성적이라는 표현을 즐겨한다. 특히 겨울에 내리는 비를 처량하기 그지없다고 말한다. 겨울비는 길가에 고이거나 얼어서, 여자들의 스타킹이나 남자들의 바지 밑단을 더럽힌다. 투명한 초심을 포기한 채 먼지를 껴안고 말라가는 비의 얼룩을 사람들은 자주 외면한다. 우산 하나 챙기는 일이 불편이되고, 젖은 옷깃이 마르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그러나 봄비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 비가 설령 옷을 적신다 해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봄의 빗소리는 심장의 펌프질과 어울리는 화음이며, 봄비의 차가움은 간결한 포인트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말해주기때문이다. 봄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들의 적당한 소란스러움이다. 모든 비가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봄비는계절의 빈칸을 채우는힘이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언어를 고집하지 않는다. 눈이 침묵으로 다가온다면, 여름이나 가을에 내리는 비는 경쾌하거나 무겁다. 그러나 봄비는 다르다. 실로폰 치듯 만나는 대상과 자신의 소리를 조화롭게 믹스한다.
봄비가 내린다.
편의점 앞 테이블 위에 내리는 봄비는 간결하다.
톡 톡 투 두 둑.
길고 짧음의 리듬은 어떤 악보로 연주되는 걸까.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어볼까.
포장마차 위로 봄비가 내린다. 짧고 얕은 노크 소리가 재빠르게 왔다가 사라진다.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좁은 의자에 걸터앉아 하하호호 소주잔을 부딪친다. 봄비 내리는 날 포장마차에간다면, 노래가 제일 먼저 술에 취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후렴구가 빗소리와 함께 날리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 바퀴 아래로 봄비가 빨려 들어간다. 차박차박 또는 샤악샤악, 피보나치수열을 그리듯 어지러운 소리, 그렇다고 조잡하거나 사악하지 않다. 균등하고 섬세한 봄의 빗소리는 바퀴에 엉켜 길 위에 자잘하게 뿌려진다.
만약 빗물이 고인 양동이에 봄비가 내린다면 어떨까. 빗방울은 잠자는 빗물을 꼬집고 달아날 것이 분명하다.
Tomas Charters
한 남자가 챠박챠박 봄비를 밟고 집으로 간다. 어깨를 타고 등 뒤로 토로록 떨어지는 봄의 빗방울은 남자의 눈물을 대변할 수 있다.그 기쁨에 우산만이 소란스러운 댓글을 달수 있다. 세상이 침묵으로 일관할 때 봄비는 적당히 소란스럽다. 소인국에서 열린 난타처럼 심장을 깨울 정도의간지러움으로... 그렇게 적당한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이 새벽에 봄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