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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혜경 Apr 29. 2021

아재, 구합니다

말이 없고 태도가 반듯한


 그거 저번에 했던 얘긴데


대화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지루함을 피하는 일이다. 잘못했다가는 대화를 주도한 사람이 '아재'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똑똑해서 뻔한 이야기가 자신의 귀를 괴롭히는 순간 상대방에게 아재라는 낙인을 찍어서라도 지루함을 보상받으려 한다. 그래서 '아재'는 분위기 파악이 느리거나 다 아는 이야기에 혼자 심취한 사람을 두고두고 놀려 먹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주로 현실감이 떨어진 나이 든 사람과 꽉 막힌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놀림의 세례를 받게 된다.


원래 '아재'는 자신보다 윗 항렬의 남성인 친척을 부르는 말로, 5촌 당숙이나 7촌 재종숙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이와 비슷하게 경상도 방언으로 여자를 칭할 때에는 '아지매'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집안의 어른을 칭할 때 사용하던 호칭이 오늘날 웃음거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아저씨를 낮추는 것에서 모자라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본 뜻에서 멀어진 '현대판 아재'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분위기를 대변하는데 분주하다. 대화의 중심은 무엇보다 소통에 있는데, 그 중심에 벽을 만드는 사람들을 흔히 '아재'라고 칭한다. 아재들의 공통점은 시대에 뒤떨어진 어휘력이나 분위기 파악이 느린 둔함에 있다. 그것은 썰렁함으로 변주되며 상대방에게 고구마 몇 개를 먹은 만큼의 부담을 안겨준다. 그래서 이미 아재의 꼬리표를 달았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수 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흔히 "나이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말을 낭비하지 않아야 하며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가르치려 들지 말고 말없이 모범을 보인다면 아재라는 낙인을 쉽게 지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며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내공이 아니고서야 어림도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롤모델'이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동물이나 사물의 속성으로도 대체될 수 있다. 인간은 자주 흐트러지 때문에 롤모델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면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래서 말이 없고 태도가 반듯한, 상대의 불행을 자신의 존재만으로 지울 수 있는, 배려와 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모델이 필요하다. 어디 없을까. 이런 조건을 충족한 모델... 아, 있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운전하다 한 두 번은 봤을 마네킹 경찰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운전하는 아재들에게 이만한 모델이 어디 있을까. 이유를 묻는다면 몇 가지만 달아보겠다. 일단 인간의 외형, 남성을 닮았으니 '그'라고 칭하겠다.



마네킹 경찰관 | 충북지방경찰청 제공  © news1



그는 말이 없다. 세상 소음을 다 듣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그가 할 일은 잘잘못을 따지며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사전에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잘못을 다 알면서도 못 본 척 그 흔적을 기록하는 '과속카메라'보다 인간적이다. 도로 모퉁이나 난간 뒤에서 가끔 섬찟할 때에도 있지만 언제나 묵묵히 바라보며 안전을 도모하는 모습은 어떤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아재들이 마네킹 경찰에게 배워야 할 것은 침묵이다. 묵인이 아니라 묵언이다. 할 때 하고 안 할 때에도 말하는 아재들이 가장 먼저 본받아야 할 것이 이것이다.



그는 자신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비탈길이든 바람이 부는 곳이든 따지지 않는다.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열정이 소비되길 바라며 그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라고 여긴다. 그는 나뭇잎이 빛을 가린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나뭇가지로 인해 소홀해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과 공존할 수 있는 넉넉함은 자신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시대의 아재들이 이런 점을 본받는다면 쓸데없는 자리에서 더이상 자신을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과속을 싫어한다. 과속은 실수를 유발한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제동 거리에도 문제가 생기는 과속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폭력이 된다. 규정 속도를 준수하면 불필요한 사건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재들의 과속은 운전뿐만 아니라 언행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급한 행동과 말이 실수를 낳고 거친 분위기로 몰아간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아재들이 그처럼 자신의 속도를 준수하면서 삶에 어울리는 리듬을 탄다면 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날씨 탓을 하지 않으며 행여 세상에 할 일을 못할까 그 순간의 자신을 탓한다. 그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과거와 미래보다 현재에 존재함을 감사한다. 그는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석진 곳에서 어둠을 지운다. 이 시대의 아재들이 어둠의 그림자를 지우며 젊은이들의 등불이 되어 준다면 세상은 그들에게 답할 것이다. 존경으로 눈빛으로.






이 시대의 아재들에게 딱 맞는 롤모델을 골랐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이 사라지고 있다. 충청도를 시작으로 하나 둘 사라지더니 요즘은 경광봉 또는 LED 등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크게 감소시킨 아재들의 롤모델 일명 마네킹 순경이 뜬금없이 명예퇴직을 한 이유는 뭘까.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잔머리 굴리지 않고 일한 죄. 이걸 오지랖이라 표현하는 엉덩이에 뿔난 현대인들의 눈에 띈 죄. 질투라도 한 걸까. 너무 말이 없어서? 너무 반듯해서? 그래서 함부로 대한 걸까. 노노, 그럼 안 된다. 귀하신 몸이라 건드리면 탈 난다.


그가 서 있는 곳은 교통사고가 잦아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몰상식한 사람들이 쓰레기를 투척하는가 하면 옷을 벗기고 얼굴에 낙서를 서슴지 않는다.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홧김에 옷을 뜯거나 선글라스를 벗기는 일이 다반수다. 평소 사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존재를 폭력으로 드러내고 싶은 자들의 행위로 해석된다. 그가 자신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멋진 롤모델을 만났는데 안타깝다. 그래서~~~




그 옛날 우리가 '아재'로 칭하던 집안의 어르신,
어디 안계실까?
헛기침 하나로 방 안의 공기를 평정하던
그런 멋진 아재 말이다.
말없이 태도가 반듯한
그래서 그림자도 밟기 어려운
그 옛날 그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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