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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Mar 27. 2020

코로나가 바꾼 일상 - ‘아이리시 펍은 휴업 중’

아일랜드에서 함께 위기를 건너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강타한 지 두 달 후 유럽 대륙에도 퍼지기 시작하더니 한 달 만에 전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하던 상황이 뒤바뀌어 이제는 한국의 가족들이 아일랜드에 있는 나를 걱정하는 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럽에서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나라는 이탈리아. 그 뒤를 이어 스페인, 독일, 스웨덴, 프랑스, 영국 등 줄줄이 매일 엄청난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경신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이들 국가에 비해 그 수가 적은 편이지만 매일 확진자가 배로 늘어나고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만 4만 명으로, 검사가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게 가시적인 수가 적은 이유일 수도 있다. 검사를 접수한 후 집에서 자가격리하며 대기하는 기간만 약 1주일, 검사를 받고 와서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만 다시 1주일이 걸린다니, 만약 감염자라면 그 사이 혼자 앓다가 낫거나 치료를 못 받아 죽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가속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 코로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끔직한 상황을 매일 뉴스로 듣다 보니 정말 겁이 났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검사도 신속하고 치료를 바로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해외교민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전쟁터에 남편을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라고 남편과 손가락을 건 후 한국행을 포기했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가장 못하는 두 사람이 이제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아일랜드에 첫 확진자가 보고된 것은 지난 2월 29일. 그리고 2주 후인 3월 13일 모든 학교가 2주간 휴교에 들어갔다.(하지만 최근 부활절 후가가 끝나는 4월 19일까지 휴교가 연기되었다.) 그즈음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3월 17일 아일랜드의 최대 축제일인 ‘성패트릭스데이’에 퍼레이드를 예정대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였는데, 처음에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여론에 떠밀려 취소했다. 200년 축제 역사상 처음으로 퍼레이드도 기네스도, 초록옷의 물결도 없는 텅 빈 거리는 비현실적으로 허전하고 쓸쓸했다. 이어 상업공간에 대한 좀 더 강한 규제가 실시되면서 펍, 레스토랑, 카페 등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 슈퍼마켓, 약국, 주유소, 세탁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다. ‘Social Distancinga’(사회적 거리두기)와 손 씻기 안내문이 경고장처럼 이곳저곳에 나붙어 있고, ‘Stay Home’이란 문구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 사태가 얼마나 갈 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나마 아일랜드는 독일, 스페인처럼 사재기가 극심하지 않고 식료품과 생활용품 공급이 원활한 편이라 조금 마음이 놓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슈퍼마켓 안에 설치한 가드(왼),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코로나 소식


아침마다 뉴스를 확인할 때마다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와 전 세계의 총체적 경제위기 등등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들뿐이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갑자기 바뀐 일상의 불편함, 무엇보다 새로운 생활패턴을 설계하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싶은데 아직도 혼란스럽고 마음이 안 잡힌다. 뭘 해도 집중이 안 되어서 괜히 이것 찔끔 저것 찔끔 하다보면 하루가 다 가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들어 속상하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산책하는 것이 유일하게 숨통을 틔워주는 일과


무엇보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 그나마 나는 존과 둘이 시간을 보내니 외로움이 덜 하지만 혼자 사는 친구들은 많이 외롭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혼자 사는 친구들에게 메시지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쓰려 노력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토요일이 우리 7주년 결혼기념일이다. 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집밥을 먹으며 기념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쩌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도 우리의 삶은 예전과 똑같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받은 타격을 극복하는 데도, 코로나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처가 낫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또 서로를 도우며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신 앞에 좀 더 겸손해질 것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그나저나 누가 펍 없는 아일랜드를 상상이나 해봤을까? 삼삼오오 펍에 모여 떠들썩하게 술잔을 부딪치던 소음이 참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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